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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21. 2019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된 이유

라떼는 말이야 - #3. 휴가 가기 전 인수인계 1순위는 신문

대학생 때 잠시 아침 수영을 다녔다.

아침 6시에 수영을 하고,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참 멋있어 보였다.

‘나도 나중에 회사에 다니면 아침에 수영을 다녀야지~!’라고 생각했다.


신입사원 시절,

본사로 출근한 첫째 주에

과장님께서 물어보셨다.

“책인사씨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나?”


“네! 물론입니다! 저는 아침형 인간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주에 제대했습니다!”

(정말이다. 토요일에 제대하고 월요일에 입사했다.)


과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럼 책인사씨가 내일부터 전무님, 상무님, 이사님, 부장님 자리에 아침에 신문 좀 가져다 놓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몇 시까지 가져다 놓으면 되겠습니까?”


“응, 임원분들 출근하기 전까지만 세팅해줘.

전무님이 가장 빨리 나오시는데, 보통 06:40 전에는 나오셔.”

(feat. 해방감을 느낀 과장님의 표정)


’응...? 잘 못 들었나?

06:40...?

그럼 난 몇 시에 나와야 하는 거지...?

회사까지 1시간이 걸리는데...?’


그렇게 다음날부터

8년간의 아침 신문 세팅이 시작되었다.


06:40까지 회사에 도착할 수 있는

마지막 지하철 출입문이 내 눈 앞에서 닫힌 날은

정말이지 다음 지하철 역까지만

지하철 칸과 칸 사이에 매달려 갈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06:30에 여유 있게

회사가 있던 지하철역 출구를 걸어 나오는데

전무님의 그렌져가 휙~! 지나가면

회사까지 바람과 같은 속도로 뛰어갔다.

(그 당시에는 주요 임원 차종, 차량번호까지 다 외우고 다녔다.)


‘주차장에 주차하시고 집무실까지 올라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넌 할 수 있어!’를 외치며.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첫 번째 휴가를 가게 되었다.

(연차휴가는 1년에 하루정도 쓸 수 있는 휴가라는 인식이 있었다.)


내 휴가 일정이 잡히자,

과장님께서 일주일 전부터 신문 인수인계 점검에 들어갔다.

“인사씨. 신문! 신문이 중요해!

신문이 절대로 문제 되지 않게 인수인계 잘해.”


나는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후배를 데리고 부지런히 설명해 줬다.


전무님 신문은 책상 오른쪽 아래.

제일 아래 OO일보, 그 위에 OO일보, 그 위에 OO경제. 열은 오른쪽 정렬.

지역 광고지는 다 뺄 것.


상무님 신문은 책상 왼쪽 위에.

제일 아래 OO경제, 그  위에 OO일보, 그 위에 OO경제.

상무님 신문은 광고지 그대로.


“후배. 잘할 수 있지?

펑크 나면 절대 안 돼.

나는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늦은 적 없어.”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과장님은 이런 기분이셨구나.

내가 더 감사하다. 내가 너 덕분에 휴가를 간다.)


하지만 내 휴가기간 동안 후배는 한 번의 지각과

전무님과 상무님의 신문이 뒤바뀌는 한 번의 배달사고를 냈고,


나의 휴가 복귀와 함께

아침 신문 세팅은 8년간 나만 해야 하는 중요 임무로 남았다.

(후배. 너... 혹시 의도된 연출이었냐?)


하지만 그때는 ‘내가 그만큼 믿을만한 사람인가 봐’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회사를 옮겼다.

옮긴 회사는 아침 출근 시간이 09:30.

우와... 아침에 3시간이나 여유가 생기다니.

심지어 퇴근시간은 3시간이 더 빠른데.

(하루에 몇 시간이니?)


그렇게 회사를 옮기고

3년 동안 아침 수영을 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첫 직장에서 이뤄보지 못한

아침 수영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좋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자의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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