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ck Stops here.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지지하는 정당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채상병 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급을 막론하고 녹색 견장을 달고 있는 지휘관이라면,
부대원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종일관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 모습에
제가 군복무하던 시기에 겪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소대장님. 교육장 이십니까? 빨리 부대로 복귀하십시오. 사고가…”
전화를 받자마자 큰 사고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장에서 일과 중이던 저는 바로 정비소가 있는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기계화 부대의 정비소는 항상 활기가 넘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제가 도착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상사 정비관은 하염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검은색 기름기가 가득한 정비소 바닥의 벌건 핏자국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슨 상황입니까?”
저의 질문에 중사 부소대장이 답했습니다.
“A 상병이 그만..”
A 상병은 항상 웃는 얼굴로 착실히 군생활에 임하던 소대원이었습니다.
그날도 무거운 부품 밑에 들어가 정비를 하던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던 와중에,
고임목이 빠지며 부품에 깔려버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급하게 찾아간 국군광주병원.
제가 봐도 A 상병의 상태는 위중해 보였습니다.
바로 A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A 상병을 보살폈습니다.
A 상병의 부모님이 병원에 도착하셨고, 저는 A 상병의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 제가 책임지고 A 상병이 회복할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A 상병의 부모님은 집과 가까운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의 후송을 희망했습니다.
국군광주병원의 중령 군의관은 “후방부대는 규정상 대전통합병원까지만 후송 가능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당시 저는 중위였지만, 중령에게 큰 목소리 말했습니다.
“중령님! 지금 환자 상태를 보십시오! 무조건 성남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을 해야 합니다! 해
부모님 간병도 생각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규정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합니까?“
중령 의무관이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군 앰뷸런스를 한 대 내줄 테니, 소대장이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을 해보세요.
하지만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전라도 장성에서 경기도 성남으로 군 앰뷸런스를 타고, A 상병을 후송했습니다.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에는 밤늦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군군수도통합병원 당직사령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왜 대전으로 안 가고 여기로 왔어요?”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일단 던졌구만..”
광주에서의 호기로움은 어디로 가고,
성남에서는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입원을 부탁드렸습니다.
다행스럽게 입원 승인이 되었고, A 상병은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얼마뒤 대학병원에서 수술까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채상병 특검법 청문회를 보며,
육군 훈련소 신병 사망사건을 보며,
거의 20년 전의 그날이 생각납니다.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보는 부모를 바라보면서,
사건이 발생한 부대 정비소에서 장기복무를 해야 하는 부사관들이 제 눈을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병원에서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A 상병을 보면서,
제가 선택한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책임을 지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책임을 회피하면 결국에는 법적 처벌을 받게 됩니다.
책임지는 것을 선택하면, 지지와 응원을 받게 되지만, 책임 회피를 선택하면, 진실 규명을 위한 불필요한 공방이 이어질 뿐입니다.
행여나 책임을 회피하고 법적 처벌도 피했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책임지는 자세야 말로, 문제 해결의 시작입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 없는 선택을 꼽아보라면,
20여 년 전 제가 책임지고 A 상병을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하고,
최선을 다해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숨진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해병대 채상병, 그리고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 박훈련병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