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원론
사랑에는 경제학이 통하지 않는다.
때로는 숫자가 주는 정확함보다
느낌이 주는 모호함이 옳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아주 먼 미래의 시간들이 펼쳐진다. 그런데 상황이 좀 나쁘다. 세계 각국 정부와 경제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인류는 환경 악화로 인하여 만성적인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해있다. 이에 대다수의 인류는 식량 재배를 위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전직 엔지니어이자 주인공인 쿠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시공간에 불가사의한 틈이 열리고, 딸 머피의 방에서 무언가로부터의 시그널을 느낀 쿠퍼는 우연히 NASA에서 비밀리에 추진 중인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다. 브랜드 박사와 팀이 된 쿠퍼. 이들의 임무는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플랜 A는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내어 지구에 있는 모든 인류를 태우고 이동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중력 방정식’을 풀어야만 했기에 장담할 수 없는 플랜이다. 그리고 플랜 B는 수정란을 새 행성으로 보내어 인류를 재건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현재 점점 황폐화되어가는 지구의 인류는 모두 사망하게 된다. 중력 방정식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쿠퍼와 브랜드 팀은 가장 먼저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3개의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나선다.
웜홀을 무사히 통과하고 첫 번째 행성에 도착한 이들. 그러나 아쉽게도 이 행성은 온통 물로 뒤덮인 행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산맥으로 추측했던 것이 사실 엄청난 파도였고, 쿠퍼 일행은 고군분투하며 행성을 겨우 빠져나왔지만 이미 시간은 ‘2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우주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20여 시간과 같기에, 아주 값비싼 비용을 치른 셈이다. 또한 애석하게도 이 행성에서 시간과 비용을 너무 지체한 나머지 이제는 단 하나의 행성에만 갈 수 있는 자원이 남아있다. 두 번째 행성에 갈 것이냐 세 번째 행성에 갈 것이냐. 이들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선택의 문제’는 경제학의 가장 기초 개념이다. 경제학의 모든 문제가 바로 이 선택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택의 문제는 무한한 욕망과 희소한 자원이 결합되었을 때 발생한다. 이는 ‘희소성의 법칙’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이를 충족시킬 자원은 유한하고 희소하다는 것이기에,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개념은 ‘기회비용’이다.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면 또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쿠퍼 일행이 두 번째 행성을 선택하면 세 번째 행성은 포기해야 하고, 세 번째 행성을 선택하면 두 번째 행성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선택된 하나의 비용은 포기한 다른 것에 대한 기회이고,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선택의 비용을 ‘기회비용’이라고 정의하여 포기한 다른 선택에 대한 가치를 측정한다.
쿠퍼 일행은 선택을 위해 팀원들과 회의를 시작한다. 브랜드는 연인인 에드워드 박사가 머물고 있는 세 번째 행성을 선택한다. 가장 큰 근거는 ‘사랑’이다. 사랑으로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쿠퍼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은 만 박사가 머물고 있는 두 번째 행성을 선택한다. 브랜드가 주장하는 막연한 ‘느낌’보다는 만 박사가 보내는 데이터가 더욱 명확하다고 느껴서이다. 느낌을 따라 선택하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들은 두 번째 행성으로 선택하여 출발하게 된다.
만 박사가 있는 두 번째 행성에 도착한 이들. 그러나 만 박사가 보낸 데이터가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다. 만 박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이 행성을 선택하여 왔지만, 정말로 자신이 택한 행성이 인류가 살 수 없는 행성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따라서 혼자 쓸쓸히 죽고 싶지 않아 허위 데이터를 전송하여 쿠퍼 일행이 오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러한 만 박사의 사고 회로는 행동경제학의 하나인 ‘보유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행위를 심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행동경제학은 우선 주류 경제학의 전제인 ‘합리적인 인간’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즉,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때때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특히 이중 ‘보유효과’는 자신이 택한 대상에 대한 애착으로 객관적인 가치 이상을 부여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만 박사는 자신이 택한 두 번째 행성에 필요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였기 때문에 인류가 살 수 없는 행성이라는 가능성을 회피해버린 것이다.
만 박사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팀원을 해치고 무리하게 인듀어런스 호를 탈취하다 죽고 만다. 쿠퍼와 브랜드는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고, 만 박사의 탈취 과정에서 인듀어런스 호는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다. 이는 모두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경제 주체들 사이에서 보유한 정보에 차이가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현상이 존재하면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과 같은 비효율적 자원배분이 발생한다.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만 박사와 정보 열위에 있는 쿠퍼 일행 사이에서 만 박사가 일행들을 공격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고장 난 인듀어런스 호는 블랙홀에 끌려가기 시작하고, 쿠퍼는 미묘한 어느 알 수 없는 공간인 테서렉트로 가게 된다.
테서렉트에서 쿠퍼는 자신이 무언가로부터 느꼈던 강렬한 시그널이 바로 자기 자신이 보낸 신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인과관계처럼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쿠퍼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기묘한 공간 한가운데에 서서, 이제 모든 것을 완성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중력 이상현상을 일으켜 딸 머피에게 모스 부호를 전송하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머피는 그 신호를 눈치채고, 마침내 중력 방정식을 풀어내면서 지구의 모든 인류는 생존하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우주에서 구조된 쿠퍼는 드디어 딸 머피와 만난다. 백발이 되어 곧 임종을 앞둔 머피는 아빠 쿠퍼에게 브랜드를 찾으러 가라고 말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한편, 에즈먼드의 세 번째 행성에 도착한 브랜드는 헬멧을 벗는다. 그 행성이 바로 그토록 찾던, 인류가 머물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이었던 것이다. 브랜드가 주장했던 근거는 ‘사랑’이었다. 쿠퍼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은 그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만 박사의 데이터를 맹신했지만, 결국 해답은 ‘사랑’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처럼, 인터스텔라는 우주 과학영화가 아니라 사랑 영화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경제학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다. 사랑에는 경제학이 통하지 않으며, 때로는 숫자가 주는 정확함보다 느낌이 주는 모호함이 옳을 때도 있는 법이다.
장면이 바뀌고, 쿠퍼는 우주선을 훔쳐 브랜드가 있는 세 번째 행성으로 출발하고, 인류의 새로운 터전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며 긴 잠에 들 준비를 하고 있는 브랜드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상황은 마치 코로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있는 듯하다.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으로 온 세상이 멈춰있는 것만 같았던 2020년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영화는 우리에게 단 한 줄의 명대사를 남긴다. 이를 인용하며 첫 번째 글을 마칠까 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