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힘은 어디에서 생길까?
마음PT 참여자들은 처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매우 낯설어한다. 그러나 이내 어색한 감정이 사그라들고, 조금씩 자기 감각을 믿고 따르기 시작한다. 이 잔잔하면서도 기적과 같은 변화는 내가 경험하는 특별함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경험이 아닐까.
미래를 예측하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그저 환호받기 좋은 이벤트에 불과하다. 물론 그러한 능력이 오늘날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자극적인 콘텐츠가 익숙해진 시대에는 조용한 내면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더디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정착하는 것은 평범한 자연스러움 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온화한 기적들이다. 마치 방금까지 기어 다니던 아기가 문득 스스로 제 발을 딛고 일어섰을 때의 감동과 같다. 눈물, 축복, 기쁨, 그리고 치유에 이르는 마음의 과정은 늘 오롯하다. 단지 아직 길을 찾지 못했을 뿐.
보통 가장 먼저 드러나는 출발선은 몸의 감각이다.
정확히는 몸 어딘가가 불편하다는 느낌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 감각과 느낌은 너무나 당연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곤 하는 구조요청 신호다. 마음PT에서는 이 순간을 ‘지나치지 않기’로 한다. 그게 바로 진짜 마음과 연결되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세션이 깊어지면 참여자들은 자신의 몸 감각을 곧잘 찾아낸다. 그러다 보면 거친 감각에 억눌러왔던 감정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와 당황하기도 한다. 별 걸 하지 않았는데 이윽고 불편한 감각이 이완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또 갑작스레 눈물이 나오는 걸 인지하기도 한다. 이 눈물은 거친 감각이나 혼란스러운 감정을 동반하지 않기에 대부분 이 순간을 맞이하면 의아해하신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것은 정화의 눈물입니다. 잘하셨어요! 축하드려요.”
대개는 매우 기쁘거나 매우 슬플 때 눈물이 나오는데, 이 경우에는 감정을 요인으로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 레이어가 덧씌워진다. 그것을 쉽게 카르마라고 부른다. 불교 철학으로 본다면 ‘불선업’이다. 깨달음과 멀어지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화의 눈물이다. 정화의 눈물은 감정이 아닌 알아차림의 힘을 원인으로 한다. 때문에 ‘선업’이다. 깨달음과 가까워질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선업 레이어를 덧씌우며 산다. 그만 덧씌우라는 몸과 마음의 경고가 나타나더라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정화의 눈물이란 너무나도 소중한 사막의 오아시스다. 비로소 ‘첫 알아차림’이란 녀석을 ‘출산’한 것이므로.
이 잔잔한 기적은 비로소 조용히 성장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