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건강한 사람이게 해주는 '나'들

by THE AZURE POET

나를 건강한 사람이게 해주는 '나'들


김 민 휴



1. 몸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대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건강한 인생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건강하다'와 '건강하지 않다'는 모두 우리 몸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다고 느낀다/생각하다'와 '건강하지 않다고 느낀다/생각한다'는 마음도 내 몸속에 있다.


내 정신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질없이 마음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당장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몸이 건강한 몸인가는 키와 몸 무게, 체지방, 혈액 상태 등, 이미 정상적인 몸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어 알려져 있다.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행동은 매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또 몸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마음의 기초 동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딱 한 가지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이다.


'건강하다'는 평가는 알고 보면 '잘 산다'는 말이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이다. 사실 이는 삶의 모든 것이다. 절대로 부분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 위해서는 "자지 말고 깨어 있고, 누워 있지 말고 앉아 있고, 앉아 있지 말고, 서 있고, 서 있지 말고 걷고, 걷지만 말고 달려야 한다"

달리지 못하고 걷고, 걷지 못하고 서 있고, 서 있지 못하고 앉아 있고, 앉아 있지 못하고 드러눕고, 깨어 있지 못하고 자는 사람은 결국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아픈 사람이 된다. 죽는 사람이 된다.


우선 이와 같이 몸을 건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으로 마음의 건강'은 차근차근 그리고 성실하게 회복되어 간다.


2. 마음

몸이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면, 고장 난 내 마음 기계를 잘 돌아가게 직접 수선해보자.


마음이 건강해지도록 하기 위해 해야 하는 기초 작업은 먼저 자기 마음을 사물화하고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물이 된 자기의 여러 마음들을 크게 '어둠 속의 사물들과 밝음 속의 사물들'로 구분한다. 그중 중요하게 느껴지는 사물들을 의인화한다. 사물화하고 의인화 한 자기 마음들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분리한다.


이제 나는 하나가 아니다. 두 개이고 세 개이고 여러 개다. 나는 이제 "자기 분리"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갖게 된다. 자기 분리는 모든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다. 사실 상담자와 정신과 의사의 환자 치료 과정의 시작은 환자의 '의식 또는 마음을 분리'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상담자와 의사의 치료는 말 그대로 환자를 '도와주는 것'일뿐이다. '모든 정신적인 문제는 오직 나만이 완전하게 치료, 치유할 수 있다.


자기 분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 스스로 최상의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자기 분리 후 자기에게 스스로 제공하는 "자기 격려, 자기 칭찬, 자기 성찰, 자기 상담, 자기 사랑 등"은 그 어떤 그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놀랍고 신비한 채험이다. "자기 감사, 자기 존중, 자기 자존감"을 당당히 구축해주어 이후 셀프 치료, 치유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시켜준다.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것은 '자기'와 '자아'라는 것의 차이점이다. 두 용어가 똑 같이 '나'를 말하는 것은 같은데 그 차이가 분명하다.


'자기 분리'와 '자아 분리', 그리고 '자아 분열'과 '자기 분열',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자기 분리와 자아 분열이 우리가 상용하는 어휘이다. '나'를 자아로 인식/지칭/naming 할 때는 나의 주체, 정체성이 더 강해진다. 그런데 나를 고집할 가능성을 더 키워주고 아집에 빠지게 하고 고통을 줄 수 있다.


'나'를 자기라고 인식/호명할 때 나는 더 객관화된다. 내가 타인이 되는 수준에까지도 간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부를 때 '자기야'라고 한다. 이때 자기는 타인이고 그 타인은 자기인 상태가 된다.


자기 분리가 가능해지면/되면, 진짜 살피고 treat 해주어야 할 자기는 '어두운 자기, 이다. 나쁜 자기는 분명히 밝은 자기, 좋은 자기와 함께 '나를 구성'하는 엄연한 '나'이다.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더욱 맹렬한 나이다.


이제 이 글에서 말하려고 하는 topic 또는 main point에 도착했다.


나를 건강하게, 좋은 사람이게, 당당한 사람이게 해주는 방법은 "어두운 나, 나쁜 나"에게도 분명하게 자기 영역을 주고 자기 활동을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좋은 일, 선한 일, 척한 일만 하고 살다가는 필시 자기 폭망, 아니면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폭망하게 한다.


나도 나쁜 생각을 하고, 나쁜 말을 하고, 나쁜 행동을 하도록 허락하자. 다만 항상 나쁜 나와 좋은 나가 서로 묻고 대답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나가 나쁜 나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생 공존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나는 나쁜 나가 타인을 해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고 내가 타인과 그리고 나와 사이좋게 지내며 살아가도록 적극적으로 역할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나쁜 나가 '자기 살해 sui-cide'를 하려 할 때 좋은 나는 나쁜/어두운 나를 도와줄 수 있다.


이 프로세싱이 항상, 언제나, 죽는 날까지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을 오늘도 가꾸어야 한다.


그러면 된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잘 수 있다. 그 이상의 말은 생각은 언어의 장난일 뿐이다.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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