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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랑이 Jul 02. 2021

첼로의 구약성서
<바흐 -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지적 연주자 시점

"아마 그는 매번 그 자리에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항상 그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주한다." 

- J.S Bach (1685-1750)


연주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한계를 마주합니다. 

대부분은 테크니컬 한 문제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임계점을 뛰어넘는 연주자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한계에 대한 관점의 차이입니다. 무조건 연습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강박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고 열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도를 함께할 상징적인 작품을 선택합니다.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은 역대 첼로 거장들이 평생에 걸쳐 연구함으로 한계를 시험하고 돌파하는 동기가 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음악이 왜 이토록 큰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전지적 연주자 시점으로 알아봅니다.

 

● 몰입의 힘 -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바흐의 6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전곡을 연주하는데 총 2시간 30분이 걸립니다. 

무대에서 150분은 단순히 체력이 좋다고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피아노 없이 홀로 선율과 화성을 오가며 긴 호흡을 이어간다는 것은 충분한 무대 경험과 내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이 긴 시간 동안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요?  

먼저 연주자는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선택을 함과 동시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여정을 떠났다는 것을 의식합니다. 포기가 불가능하다는 강제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남지 않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을 내려놓고 음악에 내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부터 진정한 몰입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음악과 혼연일체가 된 연주자가 쏟아내는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인간이 가진 순수한 감정들을 오롯이 마주하게 됩니다. 지난날의 슬픔과 기쁨은 모두 아름다운 선물이었다는 고백이 오가는 듯한 숭고함은 어느새 연주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감동과 치유로 다가옵니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깊은 교감이 지치지 않고 무대를 끌고 나가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기초의 재발견 -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일시적 후퇴 

아무리 연주 경험이 풍부한 연주자라도 해석과 테크닉이 체화되어 있지 않다면 무아지경의 순간에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몰입의 태평양 한가운데로 들어간다는 것은 엄청난 연습량과 뛰어난 테크닉이 수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이 작품은 각 번호마다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Gigue 이렇게 4개의 춤곡을 기본 몸체로 Prelude, Minuet, Bouree, Gavotte 등의 부수적인 곡과 함께 6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곡을 연주하는데 총 36곡을 연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긴 작품의 스토리를 가감 없이 풀어낸다는 것은 연주자 고유의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은 현재의 첼로가 아닌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라는 거트현으로 만들어진 고악기를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활의 주법과 현의 울림이 전혀 다른 악기로 연주하려면 그에 맞는 테크닉을 완전히 새롭게 찾아야 합니다. 본인의 악기에 맞는 줄을 찾는 것부터 포지션과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등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 시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스타일과 옵션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실험적 시도를 하게 함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연습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기다림의 미학 - 비록 더딜지라도...  

연주자에게 한 작품을 긴 시간 연구하는 것은 자신의 연주 어법을 완성해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카탈루냐 출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13살 되던 188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고서점에서 바흐의 두 번째 부인 막달레나가 필사한 첼로 무반주 모음곡 악보를 우연히 발견합니다. 200여 년 잠들어있던 이 작품을 어린 파블로는 고이 간직하다가 30여 년의 긴 연구 끝에 음반으로 발표합니다. 그렇게 부활한 이 작품은 후대 첼리스트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프랑스 첼로 거장 푸르니에와 첼리스트 요요 마 역시 환갑의 나이에 이르러 음반을 내게 됩니다. 이 곡을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경험이 쌓이기까지 여러 번 연주를 반복하며 때를 기다린 거장들의 발자취는 성스러움마저 느껴집니다.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은 그가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작곡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바흐를 상상하면 그에게 음악은 곧 구원이자 사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서도 작곡을 멈추지 않은, 평생을 음악에 헌신된 삶을 살았던 바흐의 그의 음악 자체로 연주자들에게 영원한 푯대이자 순수한 영감의 원천입니다.


 여러 명음반이 있지만 그중 바로크 첼로의 거장 안너 빌스마(Anner Bylsma 1934-2019)의 음원을 비교 감상해보길 추천드립니다. 

첫 번째 녹음은 1979년 버전으로 거트현을 장착한 바로크 첼로로 연주한 버전입니다. 이후 1992년에 녹음한 두 번째 버전은 비올론첼로 피콜로로 녹음되었는데 기존에 느낌과는 전혀 다른 음색과 테크닉을 보여줍니다. 

지치지 않는 탐구정신으로 바로크 첼로 음악 해석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그의 음악이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1. Anner Bylsma - J.S Bach Cello Suites 중 1번 'Prelude' 1979년 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JfTG4R1MuwY


2.  Anner Bylsma - J.S Bach Cello Suites 중 1번 'Prelude' 1992년 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_DYUWUxA_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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