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모두에게 필요한 ‘장인 정신’에 대하여
‘장인 정신’이란 뭘까? 네이버 국어사전은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할 만큼 오랫동안 전념하고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고자 노력하는 정신”이라고 정의한다.
슈트(비스포크), 구두, 주얼리, 도자기, 시계, 가방, 액세서리, 가구, 만년필 등 분야를 망라하고 공예품을 만드는 데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장인’, ‘명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나아가 커피, 빵, 맥주, 위스키와 같은 먹는 것 뒤에 붙이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PPT, 엑셀, 기획, 디자인 뒤에도 ‘장인’을 붙여 ‘무언가’를 아주 잘하고 능통한 사람임을 표현한다.
결국, 장인 정신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든 메이커(Maker)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잘한다는 것 만으로 ‘장인’이라는 타이틀을 내주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진정한 장인은 아래의 네 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1. 나만의 철학과 원칙, 방향성이 있는가
2. 품질이 높고, 품질에 대한 과도할 만큼의 집착이 있는가
3. 우월한 디자인, 사용성, 디테일, 마감을 보여주는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쓴다고?” 하는 것)
4.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있는가
이러한 ‘장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만든 ‘무언가’가 사람들에게 선택받을 때 비로소 ‘장인’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 기술한 4가지는 ‘무언가’에 대해 얼마나 깊게 고민했는지 알 수 있는 척도고, 그 ‘무언가’를 경험한 고객, 소비자, 사용자가 그것을 고스란히 느꼈을 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누군가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가성비 좋은 트레이닝 복을 구매하지 않고,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트레이닝복’을 구매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IT 업계도 다르지 않다. 전자제품, 앱/웹 서비스, B2C/B2B SaaS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 제품 철학, 높은 품질, 디자인, 사용성, 디테일, 그리고 자부심이 제품에 고스란히 드러나야 경쟁 제품 속에서 선택받을 수 있다. 이는 스타트업에게 더욱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글로벌 결제 플랫폼 스트라이프(Stripe)의 제품 철학은 “Craft & Beauty”다. 의역하면 “장인 정신 & 아름다움”이다. 올해 상반기 스트라이프 컨퍼런스(Sessions)에서 디자인 총책임자 케이티 딜(Katie Dill)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말 공감했다.
오늘날의 자동차를 보세요. 가죽, 스티치, 문 닫히는 소리까지. 이런 작은 디테일들이 모였을 때 평범한 자동차와 프리미엄 자동차의 차이가 만들어집니다. 디테일의 품질이 차별화 요소가 되기 때문이죠. 경쟁이 치열하고 기대치가 높을 때일수록 그것을 차별화해야 하며, “Craft(장인 정신) & Beauty(디자인)”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가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장인 정신’을 그토록 강조했다.
훌륭한 아이디어가 훌륭한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장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는 성장합니다. 처음 시작했던 모습 그대로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디테일한 것들을 더 많이 배우게 되고, 수많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죠. 전자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플라스틱을 써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습니다. 유리를 써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도 있고요. 공장이나 로봇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루다 보면,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은 5,000가지의 개념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가, 그것들을 모두 맞춰가는 과정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 요소들을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맞춰가는 거죠. 그리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문제일 수도 있고, 이 요소들을 조금 다르게 맞춰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은 마법과도 같습니다.
<출처: The Lost Interview, 1994>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는 '장인 정신'이 있는 사람일까?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만들고 있는 SaaS 제품은 장인 정신의 4가지 요소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많이 팔기’와 ‘경쟁사 따라잡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우리 색깔과 방향성은 희미해지고 있고, 새로운 기능을 계속 얹으려다 보니 기존 기능에 대한 개선이나 버그/이슈를 모두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품질은 내려가고, 사용성이나 마감 처리라고 할 수 있는 정교한 UI/UX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서히 제품에 대한 자부심도 잃어 간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고 타개하는 것이 나에게 내려진 숙제다.
마찬가지로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어떠한가? 이 또한,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철학과 원칙은 나름대로 있지만 글에 담겨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글쓰기 능력이 따라오지 못해 글의 품질과 디테일 역시 부족하며, 독자를 매료시키는 문체도 형성되지 못했고, 구성도 아직 미흡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장인 정신’의 정의가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할 만큼 오랫동안 전념하고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고자 노력하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노력하는 정신’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한다. ‘장인’이나 ‘명장’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장인 정신’을 갖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기에. 언젠가 누군가는 내 제품, 글, 또는 내가 만든 무언가에서 그 가치를 알아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