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산업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같은 시장에 있거나 같은 문제를 푸는 제품이라도 완전히 다른 해법을 찾아 성공하는 사례는 흔하다. 이렇게 성공을 이룬 기업들의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제품 성공의 밑바탕에는 아이디어나 기술적 역량, 마케팅 같은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철학’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 회사 - 노션(Notion), 리니어(Linear), 팔란티어(Palantir) - 의 창립자 또는 CEO 인터뷰, 발표 영상, 블로그를 살펴보며 그 확신은 더 깊어졌다. 이들은 모두 엄청난 성과를 내고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노션은 수평적(Horizontal) 솔루션, 리니어는 수직적(Vertical) 솔루션, 팔란티어는 완전 맞춤화된 솔루션을 지향한다. 이 세 가지 접근 방식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그래서 내가 이해한 대로 그들의 철학을 정리해 봤다.
<참고. 회사/서비스 간단 소개>
노션(Notion): 메모, 문서관리, 지식관리 등 생산성과 협업을 위한 툴 [링크]
리니어(Linear): 제품 개발 및 프로젝트 관리를 위한 이슈 트래킹 툴 [링크]
팔란티어 (Palantir): 데이터 분석 및 AI 기반의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제공 회사 [링크]
노션: 레고처럼 조립하여 각자의 방식대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Horizontal)
노션의 철학은 명쾌하다. “Lego, but for software.”
노션은 사용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직접 조립하고 구성할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었다.
창립자 Ivan Zhao는 “특정 목적에 국한되지 않고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고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존재(Tool Maker)이며, 그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극적으로 증폭시킨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흥미로웠다.
노션은 사용자가 노션을 도구로 활용하여 본인의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도구를 드릴게요. 문제는 여러분이 푸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철학은 노션의 핵심 구조인 블록 기반 아키텍처나 페이지 설계, 데이터베이스 구조 등 전반에 잘 반영되어 있다.
노션이 더 대단한 것은 다양한 SW 분야에서 높은 선호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2025년 1월 <Lenny’s Newsletter>에서 발표한 제품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프로젝트 관리 툴 분야에서 Jira에 이어 2위, 문서 작성 분야에서는 Google Docs와 Sheet, Excel에 이어 4위, CRM 분야에서도 Salesforce, HubSpot 다음으로 4위에 올랐다. 이것이 바로 노션이 가진 유연성이다.
리니어: 특정 사용자에게 완전히 집중한 소프트웨어 (Vertical)
리니어는 노션과 정반대의 제품 철학을 갖고 있다. “Opinionated Software”. 리니어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Karri Saarinen가 자주 언급하는 이 말은 직역하면 의견이 분명한 소프트웨어라는 뜻이다. 특정 유형의 사용자에 집중한 제품이라고 의역할 수 있다.
리니어는 철저하게 특정 사용자층(제품 기획/디자인/개발팀)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위한 최적화된 문제해결 방식과 사용자 경험을 제시하는 데 주력한다. “SaaS를 도입하는 것은 잘 정립된 프로세스를 도입한다는 것과 같다”는 크리스토퍼 채 님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리니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본인들의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이다.
Karri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듣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만들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는 고객의 피드백을 반영하면서도, 비전과 로드맵에 따라 명확한 방향성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결국, Linear의 철학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특정한 일을 누구보다 잘하고, 완벽하게 수행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팔란티어: 조직 전체를 위한 맞춤형 시스템 (Customizable)
팔란티어는 또 다르다. ‘Horizontal’도 아니고, ‘Vertical’도 아니다. 오롯이 그 고객을 위한 솔루션을 만든다.
정부 기관, 금융, 헬스케어, 제조업 등 복잡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한 대기업과 공공 영역에서 활동하는 팔란티어는 완전히 최적화되고 맞춤화된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개별 기능, 단위 기능이 아니라 전체 IT 시스템 차원에서 고객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이 팔란티어가 강조하는 “Ontology-Oriented Software Development”다. 고객의 비즈니스 맥락과 조직 구조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완전히 통합된 솔루션을 구축하는 것. 팔란티어는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운영 체계’로 바라본다. 이러한 접근은 높은 진입 장벽과 비용이 따르지만, 성공한다면 독보적인 경쟁력과 고객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다.
정리
노션은 유연하고 수평적인 소프트웨어, 리니어는 수직적인 소프트웨어, 팔란티어는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추구한다고 볼 때 누가 옳고 틀리다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누군가의 전략이나 성공 사례를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이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제품은 결국 그 안에 철학이 담겨 있고, 그 철학은 제품에 녹아들어 고스란히 사용자에게 전달된다. 어쩌면 기술보다, 디자인보다, 브랜딩보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철학이 더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참고 자료]
1) Notion's lost years, near collapse during COVID, staying small to move fast, building horizontal Ivan Zhao by Lenny’s Podcast [원본 링크]
2) Ontology-Oriented Software Development by Palantir Blog [원문 링크]
3) Inside Linear: Building with taste, craft, and focus | Karri Saarinen by Lenny’s Podcast [원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