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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May 03. 2021

도망가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가족은 반지하에 살았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중학교 일 학년 때 까지는 땅 밑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늘의 서늘함을 품은 그 공간에 익숙해져 있었고 늘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별 다른 마음은 없었다. 그저 늘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기억했다.     


  내리막 중턱에 걸쳐져 있었던 우리 집은 문을 열면 세 칸짜리 작은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그래야 비로소 바닥이었다. 계단 앞에 싱크대가 있었고 오른쪽에 작은 방이, 왼쪽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싱크대와 화장실 사이엔 문이 없어서 엄마는 변기 옆에서 요리를 했다. 작은 방 옆에는 큰 방이 있었고 침대와 텔레비전이 그곳을 꽉 채우고 있었다. 화장실과 부엌 사이에 가림막을 달고 작은방과 큰 방 사이에 문을 떼어두고 공간을 나누었다가 합쳤다가, 어떻게든 그 집에서 살아보려 했던 것 같다.     


  반지하 낮은 집에서 가장 높은 건 변기였다. 가림막을 달기 전엔 변기에 앉으면 바로 세 개의 계단과 현관문이 보였다. 변기에 앉아야 비로소 땅 위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변기 바로 뒤, 그러니까, 앉으면 머리통 바로 뒷부분에 환풍기가 있었다. 파란색 플라스틱 날개가 빙빙 돌아가는. 밥 냄새와 똥 냄새가 같이 나는 곳이었다. 온 집안엔 곰팡이가 피어 늘 쾨쾨한 냄새가 났고, 벽이 얼룩져있었고, 장판은 귀퉁이가 들쑥날쑥해서 어느 부분엔 시멘트 바닥이 보였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곰팡이였다. 아무리 벽지를 새로 붙여도, 청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공간이 가진 하나의 성질처럼 곰팡이는 시들지 않았다.  

   

  엄마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우리 집과는 다르게 깨끗하고 밝았지만, 나는 우리 집이 창피하지 않았다. 엄마가 친구를 데려오지 말라는 말에 그저 알겠다고만 했을 뿐이었다. 엄마는 우리 집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게 열한 살 짜리 딸의 친구여도. 엄마의 말에 처음으로, 우리 집은 창피한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창피한 거. 우리 집은, 창피한 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안 되는 거. 안 창피한 집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우리가 없이 살아서 그래. 다른 사람들이 알면 무시해. 이게 사람 사는 집이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는 반지하 집을 쓸고, 닦았다. 새벽같이 나갔다가 오후 늦게 들어와서 또 일을 했다. 엄마가 일을 하지 않는 때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빨래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했고, 화장실을 치웠다. 잘 때가 돼서 불을 다 끄고 누우면 엄마는 금방 코를 골았고 또 새벽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걸 매일 했다. 지겹다.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얼룩덜룩한 솔로 화장실 바닥을 밀면서, 가스레인지에 기름때를 닦아내면서, 구멍이 난 검푸른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면서. 지겹다. 지겨워.

  엄마가 피운 담배 냄새가 지하의 곰팡이 냄새와 섞이는 것처럼, 나도 엄마의 말에 섞여갔다.     


  내가 창피한 집이 뭔지 알아가는 동안, 그 집에서 사는 나 또한 창피한 거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엄마는 사는 걸 지겨워하고 있었다. 엄마는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었지만 내 온 관심은 엄마에게 있었으므로 그걸 들을 수 있었다. 듣고, 마음에 다 넣어두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다. 그만 살고 싶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진짜, 살기 싫다. 한탄의 말들. 그 말들을 들을 당시 나는 어렸고, 쉽게 감정에 물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했던 말들을 일기장에 적었고, 이렇게 창피한 집에 창피한 내가 왜 살아있는지 고민을 하게 됐다. 그 고민을 가지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를 갔고, 친구들을 만났고, 떡볶이를 먹었고, 운동장을 뛰었다. 그 고민은 내가 됐고, 내가 그 고민이 됐다. 그동안에도 엄마는 계속 사는 걸 지겨워했다. 나는 내가 불행한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불행했고, 엄마는 엄마가 불행한 이유를 알고 있어서 불행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나와 오빠 때문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너희가 있어서 살았다.      


  엄마는 지겨웠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휴일도 돈을 벌지 못하는 것에 아까워하며 집안일을 할 때에도, 곰팡이가 난 벽지에 락스를 뿌릴 때에도, 아무리 환기를 해도 빠지지 않는 지하의 냄새를 맡을 때에도, 변기 옆에서 요리를 할 때에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어린 자식새끼들을 보면 한숨이 났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휴양지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 프로그램을 방송하면 엄마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가족이 모여 앉은 밥상과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화면. 엄마는 그걸 보면서 부럽다, 좋겠다, 고 말했다. 떠나서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 그럼 나는? 엄마, 나는?

  엄마가 떠나고 싶은 바다에는, 내가 있어?          


  반지하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다. 엄마도 더 이상 지겨워하지 않고, 나도 친구들을 집에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좁은 아파트였지만 4층 지상으로 올라왔고, 화장실이 따로 있었고, 곰팡이가 없었고, 집 안으로 빛이 들었다. 베란다 앞에 서면 바깥의 길과 나무가 보인다는 사실이 한동안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네모난 햇빛이 방 안으로 쏟아질 때마다 밝게 빛나는 장판의 따뜻함이 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빛은 내 안에 남은 지하의 그늘을 밀어내기엔 충분했다.


  방의 창문으로 해가 뜨고 지는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집 베란다 높이까지 솟아있는 나무를 보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고, 바닥 아래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다녔다. 화장실 문을 닫고 혼자 씻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이곳에 이사 와 처음으로, 비로소, 내 몸을 볼 수 있었다. 내게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내 몸은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어떤 얼굴로 세수를 하는지. 그때 처음으로 내 등을 볼 수 있었다.


  점점 더 예민해지고 까칠해지는 내게, 문이 달린 방이란 정말 중요한 공간이었다. 잠글 수 있는 문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소중했다.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게. 그 안에서 나의 세계는 달라졌고 많은 밤 울었지만 눈물이 다시 내게로 스며들면서 나는 좀 더 무거운 사람이 되었다. 때때로 지하에서 보내던 날들이 생각났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베란다 밖을 쳐다보았다. 내게도 햇빛이 있었다.


  세상과 나 자신이 점점 싫어졌지만 모두 방 안에서 감출 수 있었다. 이사를 왔을 때의 마음처럼, 모든 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모든 것보다는 적은 변화였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또 언젠가는 이곳을 벗어나 더 넓고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우리는 또, 4층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꾸만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노동을 하는 어른이 되고 나서 깨달았다. 엄마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었는지. 지겹다는 말이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임대 아파트 4층.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허락된 몫인 것만 같았다.


  나는 점점 크는데 집은 그대로였다. 커진 내 몸이 집에 끼어 나갈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갇혀있다고 생각했다. 집의 크기가, 곧 나의 크기였다. 도망가고 싶다는 엄마의 말을 피부로 이해했다.

  세상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가 얼마나 낮은 곳에 있는 것인지 깨달아갔다. 그 깨달음은 매 순간 나를 찔러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지겹다. 지겨워.

  일을 하고 돌아와 지친 몸으로 누워 천장을 보면서, 모이지 않는 돈에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 것에도 짜증을 내면서, 누렇게 삭은 벽지 위에 새로운 벽지를 바르면서, 텔레비전에서 하는 여행 프로그램 화면 속 바다를 보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지겹다. 지겨워.

  한 곳에 오랫동안 살다 보면 그곳에 고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진다. 새 가구를 들이고, 창틀 색을 바꾸고, 문을 칠하고, 화장실 전구를 갈아도. 다 울고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고통들이 벽에 붙어있다 밤이 되면 흘러나와 내게 묻었다.

  지겹다. 지겨워.     

 

  내가 가고 싶은 바다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점점 입을 다물게 됐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의 삶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된 내 삶엔 내 자리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다 보면 천장이 내려앉아 나를 덮칠 것만 같은 때가 온다. 그런 밤이 지나가고 똑같은 천장을 보며 눈을 뜬 아침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진다. 너무 선명하고 선명해서 깨질 것 같다.     


  집이 나를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꾸만 돌아가는 것은 나였고, 달리 변해가는 것은 집이 아닌 나였고, 낡아가는 것도 나였다. 도망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아무리 바깥을 돌고 돌아도 결국 나의 종착지는 집이 되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때때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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