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 사람은 살아야지
‘진수야. 김샘 아침 7시 20분에 사망하셨다’
2025년 10월 4일 토요일. 장장 7일간의 추석 황금연휴의 첫날 아침, 엄마에게서 받은 덤덤한 문자 메시지였다.
충격이라기보다는 놀라움이었다. 4년 전 인후두암 선고를 받으시고,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상태에 음식 섭취와 말조차 할 수 없었지만, 나름 잘 버티고 계셨다고 생각했었다.
놀라움에 가까웠던 이유는 몇 가지 존재했다. 일단 ‘김샘’이라는 호칭에서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그는 나의 친부가 아니다. 내가 12살 때 어머니와 재혼한 새아빠이고, 사실 나에게는 좋은 추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았던 사람이다. 단지 그가 외가 쪽 친척들에게 워낙 잘하고, 무엇보다 병약한 어머니를 챙겨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내가 어린 시절 받은 학대와 고통들을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둔 채, 나름의 아버지 대접을 했을 뿐이다.
우리 엄마는 몸이 약한 체질이다. 병원 신세도 여럿 졌었고, 장기들도 온전치 못하며, 커다란 자궁 근종을 가진 채 살아가고 계신다. 그런 엄마를 믿고 맡긴 운동선수 출신의 새아빠였는데, 암 발병 이후 되려 엄마가 매일 왕복 3시간을 운전해서 대학병원, 요양병원을 출퇴근하고, 심할 때에는 중환자실에 상주하면서 그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살고 계시니, 60대 중반의 노모를 둔 아들로서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 팔자가 원래 이러하니 어쩔 수가 없다’고만 하시니, 나는 그저 ‘불쌍한 우리 엄마’라고 되뇌며, 엄마를 그리고 나 자신을 위로하는 수밖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가 먼저 지쳐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라고 통화한 지 며칠 안되어 부고 소식을 들으니, ‘부디 엄마를 평안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했던 게 마치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물론 가까운 사람이 하늘나라로 가시는 건 안타까웠지만,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병간호를 하던 엄마까지 말라비틀어져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문득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