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책임감, 그리고 또 다른 책임감
나는 철없고 돈없는 30대 중반의 미혼 남성이자, 평범한 직장인. 집안의 장남. 그러나 이룬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어린 영혼. 서울에서 옥탑방 월세 생활을 하고, 잘못된 투자와 투기로 쌓인 대출이라는 죗값을 치르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친척들과 사이는 좋지만, 괜스레 얼굴 비추기가 부끄러워 차마 내려갈 생각을 못하고, 그렇다고 황금연휴를 허송세월 보내기는 아쉬운 때에, 마침 추석 맞이 떡집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아놓은 상태였다.
작년 추석에도 했었기에 사모님과 연이 있어 두 팔 벌려 환영을 해주셨고, 수많은 송편을 포장하고 운반하며 개고생을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값진 육체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것이라 자기 암시를 하며 떡집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엄마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헐 ㅠㅠ 근데 나 떡집 알바 이제 시작해요 이따 연락할게. 힘내고 잘 추슬러요 엄마’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받아들이는 충격의 크기가 작았던 건지, 아니면 맡은 일에 대한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건지 가늠조차도 안 되는 나의 철없는 반응이었던 것 같다.
물론 연휴기간에 엄청난 육체노동을 요구하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당일에 펑크 냈을 때의 고용주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 것도 맞지만, 잠시 짬을 내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보니 댓글 반응은 내 생각과 정반대였다. 그래서 다시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 인터넷에 글 올려서 물어보니까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일을 빼고 가는 게 맞다는데?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네… 근데 그럼 나도 상주예요? 아니면 조문객?”
“너도 아들로 올렸다”
“그렇군요”
엄마가 보내준 장례식장 사진의 ‘자’에 배다른 두 명의 형과 내 이름이 같이 적혀 있는 걸 보니, 나의 뇌리에 전달되는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본래는 얼굴만 비추고 다시 올라올까 고민도 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부 친가 쪽 사람들인데 엄마 홀로 쓸쓸하게 고독한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들었다.
결국 떡집 사모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고, 사모님은 어떻게든 대타를 구할 테니 들어가라는 말씀에 나는 한사코 저항하며, 오늘 일까지는 제가 책임지고 하겠다고 고집 피우며 묵묵히 오후 5시까지 고된 일을 마쳤다.
사모님이 직접 챙겨 주신 하루 일당과 깨송편 1kg를 받아 들고, 집에 와서 맥주 한 잔을 꺼내 책상에 앉았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간 일을 하기로 되었으나, 하루밖에 못한 미안함, 하지만 그 하루라도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해냈다는 나름의 뿌듯함. 무엇보다 내일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상주로서 그리고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해내야 한다는 또 다른 책임감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다만 강도 높은 떡집 노동의 여파 덕분에 이내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