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상주
아침 일찍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광주로 내려가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여느 때라면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이내로 도착했겠지만, 추석이라 6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마침내 두 다리로 서서 뻐근한 몸을 풀 수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상복을 입고 추레한 모습의 엄마, 외할머니, 큰삼촌, 이모들, 사촌동생 등 외가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본래 계획에 없었으나 오랜만에 만나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또 이런 일로 얼굴을 보게 되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상주복을 입고 있는 배다른 큰형과 작은형을 비롯하여 형수님, 조카들도 있었고, 20년 가까이 못 보고 지낸 새아빠 쪽 친가 친척들과도 어색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이미 크게 마음을 먹고 온 만큼, 가볍게 식사를 한 후에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실 크게 슬픈 마음은 없었지만 슬픈 척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들었다. 혹여나 내가 괜한 실수는 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웠고, 막상 조문객을 대하고 맞절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20년 만에 뵈는 작은 고모나 친척 형님들과 나란히 있을 때만 괜히 민망해져서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였다.
어머니가 몸이 약한 것도 있고, 상주 휴게실에 머물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기도 했고, 또 요즘 장례 트렌드가 바뀌어서 그런지, 엄마와 나는 근처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가서 편히 자고 오라고 하여 밤 10시쯤에 집을 향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의 깊은 대화는 시작되었고, 차차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나름 평소에도 엄마와 소통을 꽤나 자주 한다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나는 엄마를 잘 모른 채로 살아왔던 것만 같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많이 피로하고 수척해 보이는 엄마지만, 내가 자동차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직접 운전대를 잡으셨고, 엄마를 위로하고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나는 무심한 아들로 살아왔었구나라고 깨달았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희생만 하고, 당신 몸도 성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프신 외할머니, 그리고 새아빠) 병간호만 하던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시면서도, 정작 묵묵히 그 쓸데없는 책임감의 무게를 견뎌내 온 엄마. 시원섭섭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문객을 만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셨다.
철없는 아들로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늘 숨이 가쁘고 벅찼기에, 말로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소중한 내 엄마라고 하면서도 정작 정성 어린 케어를 해드린 적이 없던 것 같다. 이제는 이혼 그리고 사별의 경험을 하고 정말 홀로 남겨진 우리 엄마를 위해, 내 남은 인생을 희생해서라도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는 엄마와의 날들을 함께 만들어가고 추억하고 싶어졌다.
담양에 있는 본가 시골집의 정원에서 엄마와 함께 서있다가 문득 이 이야기들을 남기고 싶어 집 안으로 달려와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주 먼 훗날, 엄마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야만 하게 되는 어느 날, 비통하게도 그런 날이 내게 찾아온다면 그때는 내가 진짜 상주가 되어 작별 인사를 하고 조문객들을 맞이해야 하는 상상을 하니 고장난 듯이 눈물이 흘러 멈추지가 않았다.
상주가 되는 경험을 통해서 시작한 이 이야기, 상주가 되는 상상을 통해서 쓰이는 나날들이 부디 오래오래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