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의 아내

조명받지 못하는 조연의 삶, 호수 아래 오리의 발버둥

by 유지니안

"너의 기여도는 40%야. 아무리 많아도 49%."

남편이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감사 인사를 기대했던 내게 돌아온 말이었다.

49%. 과반에 못 미치는 숫자. 결정적이지 않은 역할. 그래, 결국 자기가 더 잘해서 합격한 거라는 뜻이었다.

그 순간, 지난 2년, 737일의 여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보이지 않았던 나의 노력들


시험 1달 전, 새벽 3시. 딸아이가 무섭다며 또 울었다. 남편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귀마개를 하고 거실에 나가서 잤다. 나는 울고 있던 딸을 진정시키고, 침대에 눕혀 머리맡에서 섬집아기를 불렀다. 창밖의 낯선 미국 풍경이 더욱 서글펐다.

아침 6시. 남편의 도시락을 싸고, 아이 밥을 먹이고, 빨래를 돌렸다. 오전 10시. 놀이터에서 서툰 영어로 다른 엄마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오후 2시. 장을 보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 낮잠을 재웠다.

저녁 7시. 남편이 돌아왔다. 잔뜩 지친듯한 얼굴로.

"모의고사에서 좀 많이 틀렸네. 특히 Property에서..."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을 뿐, 내 하루를 묻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합격이 우리 미래라고 믿었으니까.


시험 1주일 전, 남편의 불안이 절정에 달했다. 툭하면 울컥하기 일쑤였고, 다른 합격자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나와 비교할 수 있어'라면서 그가 합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늘어놓았다. 마치 떨어졌을 때 변명거리를 만들려는 것처럼.

그래도 참았다. '얼마나 시험 스트레스가 많으면 저러겠어'라고 생각하면서. 곧 끝이 보였으니까. 내 노력이 보답받는 날이 오고 있었으니까.




깨달음, 그리고 브런치


그 49%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주연은 조연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을. 스포트라이트 뒤의 그림자가 얼마나 진한지 모른다는 것을.

분노보다는 서글픔이 먼저였다. 그리고 질문이 생겼다.

'내 노력은 정말 49%의 가치밖에 없었을까?'

글 읽기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말로는 전할 수 없었던 내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했다.


첫 글을 썼다. 출국 전 환전부터 이사까지 그 노력에 대해. 글을 쓰니, 내 마음 속 응어리가 한 조각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글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F2 시체비자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주부의 환율과 물가 고민에 대해, 세탁기 없는 집에 대해, 미국생활 와중에 한국에서 걸려온 소송에 대해, 은근한 인종차별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에 대한 섭섭함에 대해.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글을 올렸다. 놀랍게도 내 글에 공감하는 분들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공감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멍투성이 마음이 점차 나아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주연을 꿈꾸는 사회


최근 뉴스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이혼율 급증, 출산율 급락, 심지어 자녀 양육권마저 서로 미루는 부부들의 이야기.

이제 알 것 같다. 모두가 주연이 되려는 시대의 비극을.

맞벌이가 필수가 된 시대, 부부 모두 자신이 주연이라 믿는다. 회사에서도 주연, 집에서도 주연. 그러나 가정이라는 무대는 누군가의 조연 역할을 필요로 한다. 아이가 아프면, 누군가는 회사를 조퇴해야 하고.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으면, 누군가는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

문제는 그 조연 역할을 한 사람이 49%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적은 숫자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연도 조명받는 세상을 위해서


처음엔 단순히, 남편이 내 글을 읽고 '아, 네가 이렇게 힘들었구나' 깨닫기를 바랐다.

이제는 더 큰 꿈이 생겼다.

조명받지 못하는 조연들, 특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지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세상에는 주연만 별처럼 빛나는 것 같지만, 그 뒤를 묵묵히 받혀주던 조연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나처럼 49%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말해주리라. 당신은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그리고 51%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당신이 49%라고 폄하하는 당신의 배우자는, 사실 당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노라고.


p.s. 남편이 최근에 말했다. "너의 기여도는... 측정할 수 없어."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