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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엘리 May 20. 2024

이름 모를 하얀 '죽음'


    “나는 나 자신을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P.161, 숨결이 바람될때>

    서른여섯 젊은 의사 폴 칼라티치,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 무렵 암이 찾아왔다. 하루아침에 죽음과 맞닥뜨린 그는 의사이자 환자의 입장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는다.

    여든아홉 지극히 평범한 노인 주우준, 누구보다 건강을 챙기며 부지런하게 일하고 운동을 하던 그에게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그의 암 상태는 초기였지만 당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갑자기 암 환자 매뉴얼이 있는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폴 칼라티치는 약 2년간의 투병 생활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고 책들도 발간하고 아이도 낳았다.  

    우준, 그의 마음의 시간은 멈추었고 그저 죽음을 향해 한발한발 힘든 걸음을 걸으셨다. 

나도 아버지 주우준의 죽음을 책에서 나온 그들처럼 멋지게? 받아들이고 가시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말과 바람은 아버지에게 가 닿지 않았다. 아버지가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하기보다 내 욕심에 내가 생각하는 죽음의 틀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잔소리하는 어리석은 나였다. 물론 그렇다고 내 아버지의 마지막을 가치없다, 헛되다 깎아내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저 평범한 다른 이들 중 한 분이셨다. 폴 칼라티치처럼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마지막 준비는 정말 눈물겹게 존경스럽다.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는 진실 앞에서 어느 날 나에게 닥친 죽음을 두려워 흔들리지 않고 맞서 싸우고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삶과 선택을 하기를 절실히 바란다. 끊임없는 생각과 다짐으로 나의 죽음을 만들어 나간다.  


    하얀 나비 <김정호>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찾는 하얀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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