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천복을 따르라
천복을 따르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설령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문은 열릴 것이다. - 조셉 캠벨
나는 살아오면서 운이 좋았던 경우가 몇 번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지?’
첫 번째의 행운은 대학에 가는 거였다. 집안이 가난해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다.
너무나 가고 싶은 대학. 나의 고교 시절은 절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김천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로 발령을 받았다. 직장 생활 2년차, 봄에 실시한 정기 신체검사에서 재검을 했다.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산병원에서 통원치료를 했다. 어둠이 깊으면 여명이 온다고 한다.
‘대학에 가자!’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한다. 나는 낭떠러지에서 튀어 오르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전국의 대학에 대해 다 알아보았다. 돈이 적게 들어가면서 취직이 보장되는 대학. 국립대학교의 사범대학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동안 어머니께 드려서 모은 30만원. 1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는 대학입학 시험이 두 번이었다. 예비고사와 본고사.
기출문제를 구해 분석하며 예상문제위주로 공부했다. 운이 너무나 좋았다. 예상 문제가 많이 나왔다. 모 국립대의 사대에 합격했다.
겨울 방학이 다가오며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 어떡하나? 등록금 하숙비...... . 그런데 겨울 방학이 되자 갑자기 논문을 한 편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르바이트할 생각은 안 하고.
방학 내내 여러 도서관을 다니며 ‘남녀 불평등에 대한 소고’라는 논문을 썼다. 평소에 남녀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아마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방학이 끝나며 원고지 60여 매의 논문을 완성했다. 논문 쓰는 법을 배우지도 않고서 다른 논문들을 보고 흉내를 내며 쓴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어설픈 논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런데 이런 기적이? 대학에서 4.19 기념 논문현상모집을 했다. 투고했다.
당선이었다. ‘오! 이런 일이?’ 두 번째의 행운이었다. 지도 교수님께서는 내 손을 잡으시며 “석근아, 너 학문의 길을 가. 학자의 자질이 있어.”라고 하셨다. 교수님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보다 훨씬 많은 장학금을 주셨다.
나는 학보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며 '천복(天福)'을 느꼈다. 천복은 하늘이 내려 주는 복이다. 깊은 무의식에서 솟아 올라오는 희열이다. 가슴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천복은 밖에서 오는 쾌락, 즐거움과는 다르다. 밖에서 오는 쾌락은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의 불쾌가 온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한다. “너의 천복을 따르라.” 천복을 따르면 항상 기쁠까? 그렇지 않다. 안에서 올라오는 희열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큰 고통도 함께 온다.
좋아서 하는 등산도 얼마나 힘겨운가? 좋아서 하는 글쓰기, 그림 그리기, 노래도 중노동이다. 하지만 고통이 큰 만큼 기쁨도 크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이것을 ‘주이상스(jouissance)’라고 한다. 천복을 끝까지 따라가 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희열이다.
나는 철이 들면서 오랫동안 의무를 다하며 살았다. 그러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가냘픈 몸뚱이만 남았을 때, 나는 나의 길을 찾았다. 내면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나를 사로잡는 알 수 없는 천복을 따라갔다.
하늘은 삼라만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살아가면 삼라만상의 좋은 기운을 받게 되어 있다.
옛 이야기에 보면 자신의 길을 가는 주인공에게 기인과 온갖 동물들이 나타나 도와준다. 기인, 동물들은 좋은 기운의 상징이다.
두 발로 마음 가벼이 훤히 트인 길을 걷는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내 앞에 놓인 세계를.
어딜 가든 긴 갈색 길이 내 앞에 뻗어 있다.
더 이상 난 행운을 찾지 않으리.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 월트 휘트먼,《열린 길의 노래》부분
나도 천복을 따라가며 ‘더 이상 난 행운을 찾지 않으리.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시인처럼 노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