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자가 되지 말고 약자가 되어라

by 고석근

선한 자가 되지 말고 약자가 되어라


아큐는 자신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멸시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등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멸시한다는 것만 빼면 남는 것은 일등이지 않는가. 일등이라면 과거에 장원한 사람과 같은 것이 아닌가?〔......〕맞은편에서 정수암의 젊은 비구니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 아큐는 그녀만 보면 침을 뱉으며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다. 하물며 굴욕을 당한 뒤가 아닌가? 갑자기 그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오늘 왜 이리 재수가 없나 했더니 네 년을 만나려고 그랬나 봐!’ 속으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캭! 퉤!”

- 루쉰,『아큐정전』에서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에 잔뜩 취해 횡설수설이다. “요즘...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고 생각해...” “응? 뭐 좋은 일이 있나?” “응 아들 둘 다 장가보냈잖아. 내 할 도리를 다 했잖아.” “응... 그래...”


아들들을 결혼시키는 게 부모의 도리이고 이제 도리를 다 했으니 행복하다는 논리. 정말 그런가?


조선시대 같은 봉건시대라면 그 말이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을 잘 키워 결혼시키면 자신의 노후가 보장되니까. 또한 아들은 아들을 낳아 잘 키워 결혼시키면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아들을 장가보내는 게 부모의 도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의 결혼이 부모의 노후보장보험이 될 수 있나? 그렇다고 아들은 결혼을 하면 안정된 생활이라도 할 수 있나?


이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지나간 도리를 들먹이며 더없이 행복하다고 자신을 속이는 것, 이것이 바로 루쉰이 말하는 ‘정신승리법’이다.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통제할 수 있는 건, 피지배계급이 스스로 정신승리법을 익혀 실천하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다. ‘패자’는 길고 짧은 것은 재보아야 아는데, 재보기도 전에 지레 지고 만다.


나는 인문학을 강의하며 ‘고졸’이 ‘명문대졸’에게 지지 않는 사례를 볼 때가 가끔 있다. 그들은 ‘무학의 통찰’을 가지고 있다. 배운 자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절대병기다. 자신을 속이지만 않으면 누구나 자신에게 있는 약점과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강자가 된다.


그런데 많은 약자들은 정신승리법을 쓴다. ‘재력, 학벌, 좋은 가문’을 가진 사람들을 악한 자로 만들고 자신들은 선한 자가 되어 득의양양해한다. 그래서 니체는 말한다. “선한 자가 되지 말고 약자가 되어라.”


실제로 역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꾼 사람들을 보면 돈, 학벌, 혈연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별 볼일 없는 약자들이 자신을 알고 적을 알기 시작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솔직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강자인 점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의 소설가 루쉰은 서양의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당하면서도 정신승리법으로 버티는 중국민족을 안타까워하며 ‘아큐정전’을 썼다고 한다.


아큐는 건달들에게 맞을 때 자식이 애비를 때린다고 상상한다. ‘애비가 아들놈한테 맞은 것이나 다름없군. 세상이 망하려니 별놈들이 다……’ 하며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다 건달들도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알고는 “아큐, 이건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는 게 아니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따라해 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


그러자 아큐가 양 손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잡은 채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벌레를 때리는 거로 하면 어때? 나는 버러지라구. 그래도 안 놓아 줄 거야?”


건달들은 아큐를 놓아주지 않고, 아큐의 머리통을 벽에 마구 짓찧고는 떠난다. 아큐는 자신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멸시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등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멸시한다는 것만 빼면 남는 것은 일등이지 않는가. “네 놈 따윈 아무 것도 아니야.”가 아닌가!?


하지만 정신승리법은 완벽하지 않다. 아큐는 분풀이할 약자를 찾는다. 정수암의 젊은 비구니를 만나자, ‘오늘 왜 이리 재수가 없나 했더니 네 년을 만나려고 그랬나 봐!’ “캭! 퉤!” 침을 뱉는다.


정신승리법은 당한 만큼 더 약한 자에게 가해를 해야 끝난다. 그래서 정신승리법을 쓰는 사람은 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들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승용차 배기량, 아파트 평수, 강남 수도권 지방으로 세세히 쪼개진 피지배계급. 서로 이전투구의 싸움을 벌인다.


‘사자와 개미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가끔 강의 시간에 질문을 한다. 다들 “사자요!”할 때, “어떻게 사자가 개미를 이겨?” 빙긋 웃는 무학의 통찰들이 있다. 사자와 개미는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 서로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사이좋게 살고 있다.


우주 차원에서 보면 삼라만상, 이기고 지고는 없다. 약육강식이 아니라 서로가 먹고 먹히면서 서로가 먹이가 되어 주는 관계다. 우주는 상생의 아름다운 축제다.


에머슨 시인은 산과 다람쥐가 티격태격 싸우는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이 눈꼽만한 건방진 놈아!”하고 산이 부르자
다람쥐 녀석이 대답한다.
“너는 크기야 무척 크지.
그러나 삼라만상과 춘하추동이
한 데 합쳐져야 1년이 되고
비로소 세계가 되느니라.
그러니 내가 차지하는 위치를
부끄럽게 여기진 않는다.
내가 너만큼 크진 못하지만
너는 나만큼 작지도 못하고
날쌔기가 내 반도 못하지 않니?
물론 네가 나에게
매우 아름다운 길이 되어 주긴 하지만
이처럼 재능은 각자 다르단다.”


- 랠프 월도 에머슨,《우화(寓話)》부분


큰 산과 맞장을 뜨는 다람쥐. 그는 잘 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그리고 타고난 재능을. 또한 산에 대해서도.


그래서 다람쥐는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다. 맹자는 이것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했다.

작가의 이전글산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