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생(生)을 위한 가치가 어떤 관념의 진위를 궁극적으로 결정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야생의 소들은 몸이 아플 때 먹고 싶은 풀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그 풀들이 약초라고 한다.
인간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을 것이다. 식욕이 당기는 음식, 그것이 객관적으로 몸에 좋은 음식일 것이다.
‘객관적인 것은 결국 주관적인 것’이라는 건, 천지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인간은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에 과학을 붙인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엄정한 실험을 통한 검증이 진리 추구의 방법론이다.
과연 이렇게 해서 진리로 검증된 것들은 정말 진리일까? 현대철학의 문을 연 니체는 진리의 기준을 ‘힘의 의지’에 두자고 말한다.
힘의 의지를 강화하는 것은 진리이고, 힘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객관’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 전 ‘코끼리를 만지는 소경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코끼리의 다리를 만져 본 소경은 코끼리가 큰 기둥 같다고 말할 것이다. 코끼리의 코를 만져 본 소경은 코끼리가 큰 뱀 같다고 말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쓴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생각난다. ‘눈이 먼 사람이 어찌 코끼리를 알 수 있으랴?’
그럼 눈이 정상인 우리는 코끼리가 무엇인지 볼 수 있을까? 우리 눈앞에 보이는 저 동물이 정말 코끼리의 실제 모습일까?
사람마다 코끼리의 모습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작은 동물만 본 사람은 코끼리가 어마어마하게 큰 괴물로 보일 것이다.
아예 동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코끼리를 보아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소를 가까이하고 살았던 사람은 코끼리가 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객관적 코끼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된다고? 코끼리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원자로 구성한 코끼리가 코끼리의 실제 모습인가? 원자도 더 자세히 보면 핵, 전자 등으로 구성되었다는데, 도대체 어느 것이 코끼리의 실제 모습인가?
계속 연구해가면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언제? 그럼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진리를 모르고 살아야 하나?
니체는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심리는 ‘삶의 도피’하고 말한다. ‘진흙 속의 삶’이 힘드니까 ‘순수한 학문의 세계’로 도피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한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냥 알 수 있는 것일 것이다.
몸이 아픈 소가 그냥 약초를 알아보듯이. 문제는 인간은 너무나 많은 지식을 머리에 쌓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식이 머리에 가득한 인간은 힘의 의지가 약화되었다. 생(生)을 위한 가치를 직관적으로 아는 능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노자는 말했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미 도가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우리는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설령 객관적 진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안다는 건, 언어로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 진리 도는 우리가 언어를 넘어 설 때, ‘타고난 촉’으로 그냥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인간의 망념이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위기를 불러왔다.
인류는 다시 동물로 돌아가야 한다. 길을 잃으면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가라고 한다. 인간으로 진화하기 이전의 동물에서 인간의 현대사는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 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 이성복, <그렇게 소중했던가> 부분
시인은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생각한다.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 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장자처럼 ‘한 생각’만 내려놓으면, 우리는 삶과 꿈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