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아이들

by 고석근

친절한 아이들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는 쌀쌀하게 눈썹 치켜세워 응대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머리 숙여 소가 되리라. - 노신


한 어른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가 ‘햄스터를 가져오다 잃어버렸는데 좀 찾아 달라’고 하자 작은 여자 아이가 친절하게 도와준다. 차 밑을 들여다보고 차 안으로도 들어가 살펴본다.


실험에 참가한 어른들은 이러다 유괴될 수도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한국 아이들도 미국 아이들도 대체로 친절했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친절 교육을 시킨 탓일까? 아니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는 건 타고난 인간의 본성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친절하다가 유괴될 수도 있는데...... . 미국 어느 학교에서는 모르는 어른이 도와 달라고 하면 믿을 만한 어른들에게 달려가 물어보라고 가르친단다.


이렇게 교육시키면 유괴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효과가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할까?

아주 오래 전, 시냇가에 갔다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물고기들을 보았다. 큰 돌멩이들이 많고 물은 얕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희번덕거리는 배를 드러내며 끊임없이 위로 튀어 올랐다.

물고기들의 목적은 단지 지금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데 있을까? 그렇다면 너무나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이 아닌가? 아니다. 물고기들은 지금 당장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본성’을 잃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이 세상에 살아남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실패할지 모르나 우리는 살아남는 거야.’ 그들은 이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지혜롭고 숭고한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당장 위험하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인 친절을 아이들에게 거부하라고 가르쳐야 할까?

‘친절한 인간’이 사라지면 인간은 멸종할 것이다.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생존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절한 아이가 유괴되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 사회를 바꾸지 않고 범죄를 막으려다 보니 인간의 본성까지도 바꾸려는 너무나 엄청난 반인륜적인 짓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가 되었답니다

- 권태응,《땅감나무》부분



땅감나무마저도 아이들을 위해 친절한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왜 이리 불친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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