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전체요 전체는 하나다
개인이라는 존재는 홀로 아무것도 아니다. 원자도 아니고, ‘사슬의 고리’도 아니며, 단순히 기존의 것을 물려받은 자도 아니다. 이제껏 대중과 철학자가 이해했던 개인은 정말 하나의 오류에 불과하다.
- 니체, <우상의 황혼>
출판 계약서를 부치려 우체국에 갔다. 담당 직원이 컴퓨터 자판을 치다가 내게 조심스레 묻는다. “받는 사람 주소가 없다고 나오는데요.”
“네? 출판사인데 주소가 없을 리가 있나요?” 직원은 주소를 잘못 적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워낙 악필이라 글씨를 쓸 때는 항상 아내에게 부탁한다. ‘아내가 잘못 쓴 걸까?’
나는 당황하여 말했다. “주소는 봉투를 열어봐야 알 수 있는데요.” 그러자 직원이 컷트 칼을 주며 말했다.
“컷트 칼로 조심해서 뜯으시면 돼요. 나중에 제가 스카치테이프로 잘 붙여드릴게요.”
봉투를 열어 계약서 주소를 보자 ‘오! 숫자 하나를 잘못 적었다.’ 9를 4로 적은 것이다.
나는 그 직원의 친절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직원은 “네. 안녕히 가세요.” 웃음으로 화답했다. 돌아서 나오는데 우체국 실내가 향기로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니체의 ‘개인이라는 존재는 홀로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이 떠올랐다. 행복은 사람 사이에 피어나는 꽃이다.
직업은 영어로 calling, vocation이다. 이들의 어원에는 부르다(call), 목소리(voice)가 들어있다.
직업은 신의 말씀으로 주어지는 소명이라는 것이다. 이때의 신은 천지자연의 근본 원리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직업에 충실할 때, 천지자연은 잘 운행될 수 있고 개인은 천지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세상을 원한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의 직업에 성심(誠心)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비규환의 세상을 살다보면, 자조하게 된다. ‘더러운 세상!’ ‘나하나 쯤이야!’
자신을 먼지 하나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나 하나의 힘을 알아야 한다. 우체국 직원의 따뜻한 친절이 일파만파 퍼져가며 온 우주를 감동시킬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한 개인은 ‘원자도 아니고 하나가 빠져도 아무 문제없는 사슬의 고리’가 아니다.
천지자연은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에너지장이다. 요가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이다. 하나가 웃으면 전체가 웃고 하나가 울면 전체가 운다.
한 인간의 행위는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북경에 있는 나비의 가냘픈 날갯짓이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하늘로 올라가 마침 지나가던 기류를 만나 서울에 와서는 태풍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자는 ‘무기인(無棄人)’이라고 했다. ‘사람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한 사람을 버리게 되면 온 우주를 버리게 되는 것이 된다.
결국엔 자신도 버려지게 된다. 자신하나 살리는 것, 자신의 직업에 성심을 다하는 것이 천지자연의 공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면 나라는 게 홀로 어떤 실체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세상은 ‘일즉다 다즉일 중중무진(一卽多 多卽一 重重無盡)’이다. 거울이 서로 마주보며 무궁무진하게 서로를 비추듯이, 하나와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신묘한 세상이다.
우리는 자신을 버리고 남도 버려, 하나의 티끌이 되어버렸다. 티끌들은 외로움과 권태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우울증에 걸려 신음하다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에 빠져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우리는 우선 자신을 구해야 한다. 자신의 맡은 바 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니체는 말했다. “나의 주인은 나지만, 나만이 주인인 것은 아니다. 세계의 주인도 나지만, 나만이 주인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