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시절, 아버지 사업으로 인해 이사를 하게 되어 정착한 지금 이 동네에서 지낸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 만큼 두터운 우정을 쌓은 소중한 친구들도 꽤나 생겼다. 우리는 여느 또래들처럼 수업 시간에 시덥지 않은 장난을 치다 선생님들께 혼나기도 하고, 주말이면 몇 시간이고 같이 축구하고 게임하며 우리의 우정만은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언제라도 연락해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일상들을 안주삼아 밤이 깊도록 시간을 붙잡고 늘어지기 일쑤였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도 졸업하고 사회진출을 앞두고 있을 때, 나의 우상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내 일생에서 가장 큰 파도가 찾아왔다. 그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말의 의미를 태어나 처음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어떠한 정신으로 지낸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3일 동안, 부탁도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당연한듯 내내 자리를 함께 지켜주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리며 나는 친구들에게 말로 다하지 못할 깊은 고마움을 느꼈고, 내가 친구들로부터 받은 애정과 응원을 친구들이 필요로 할 때 꼭 돌려주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렇기에 다시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된 후 해외출장에서 밤늦게 귀국한 다음 날 오전에 진행된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기 위해 쪽잠을 자기도 했고, 강원도에서 결혼하는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진행하기 위해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한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맡을 때는 그다지 기꺼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오랜 시간 속에서도 동네친구라는 이름으로 무리지어 지속되어온 관계 속에서 친구들 개개인마다의 끈끈함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사실 이 관계성은 학창시절부터 동일한 성질을 지녔었고, 무리로서의 우정이 반드시 그 친구와의 우정과 동일한 무게를 지닐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 친구와는 '우리'라는 울타리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형식상의 우정을 이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단 한순간도 서로가 상대만을 먼저 찾은 순간이 없었다. 그 친구의 결혼식이 다가왔을 때에도 애초에 나에게 가장 먼저 사회를 부탁한 것도 아니었으며, 우리 중 자신이 정한 우선순위를 돌고 돌아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역시 너가 꼭 해줬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말은 유독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단번에 부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아버지를 보내드리며 고마움을 느꼈던 그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에 대한 마음의 채무로 남아 무겁게 느껴진 탓이었다.
물론 친구의 경조사에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게 무척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진심을 감추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모든 일들을 다 신경쓰는 것은 나에게 가혹한 일이 되어갔다.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오는 이 계절에,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하겠으나, 그 따뜻하고 고마운 감정이 도리어 친구들에 대한 나의 관계에 강제성을 갖게 하는 마음의 짐이 되지 않도록, 지금의 내 진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지금은 틀렸을지 모르지만 어느 훗날에는 맞아들어갈 상대에 대한 나의 이 마음이 언제나 진심으로써 발휘될 수 있도록.
그리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친구마다 내가 가진 관계 형태는 모양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할 때면 떠오르는 친구들의 따뜻함에 대한 고마움은 언제나 진심으로 나의 마음 속에서 반짝임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때때로 우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관계에 대한 무게로 내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도록, 우정이라는 이름이 나의 진심을 가리지 않도록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아다봐야겠다. 언제나 진심이 우리의 우정을 밝게 비출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