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백합니다 11

회피의 3일

by 산넙치

진실만 말하겠습니다. 몇 시간을 제외하곤 3일동안 할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은 머리카락 천국에, 소파는 빨래가 방탄소년단 - <봄날>의 뮤비라도 찍을 수 있을만큼 쌓여있습니다. 머리카락은 바닥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제 책상위에도 한 가득 있어 초콜릿 껍질과 섞여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지냈냐 한다면, 시작을 말해야합니다. 해야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은 나머지 노션에 간단하게 계획표를 적었습니다. 직장인인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즐기기 위해서 가족의 스케쥴에 맞춰서요. 그런데 이걸 좀 더 간편하게 보고 싶은 겁니다. 그 기록은 자주 보는 노션에 있었지만, 제가 페이지를 자주 이동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하나 냈습니다. 데스크탑 앱 하나 만들어서 관리해보고 싶다. 딱히 관리라고 할 것도 없긴 합니다. 그냥 일주일의 계획표를 작성하고, 지금 시간에는 뭘 해야하는지 보는 게 다인 앱입니다. ChatGPT한테 어떻게 개발할지 물어보고 판단하에 electron과 Vue, Vite 등 예비 개발자로서 해보자!하는 것은 이것 저것 넣어서 해보려했습니다. 그걸로 이틀을 날렸습니다. 그래서 만들었냐 한다면 아니요. 환경설정에만 이틀을 날렸고 결국 electron의 대체재 tauri로 합의를 봤습니다. 개발자가 아닌 사람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기술 하나 못써서 다른 기술 썼다는 얘기입니다. 온갖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달며 환경설정을 했습니다. 분명 시작은 그냥 나 편하면서, 해보고 싶은 거 해보는 게 목표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어제 tauri로 겨우 환경설정을 빠르게 끝낼 수 있었고 내부 로직을 설계하느라 새벽에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이어서 하지 않은 것이 아까워 잠을 설치다 4시쯤에 겨우 정신을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3일 동안 한 것이 딱 이 정도입니다. 빨리 따야하는 오픽?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매일매일 하려던 코딩테스트? 콤보가 깨져서 슬픈 상태입니다. 스터디 준비? 이제 급하게 시작해야합니다. 제가 30%정도는 꾸준히 해오던 루틴이 운동 말고는 모두 박살나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그 앱을 생각합니다. 팀 프로젝트도 있으니까 이제는 그만해야합니다. 그저 포트폴리오에 쓰지 않고, 나중에 이런 기술 써봤냐 한다면 써봤다. 개인으로 만들어보면서 써봤다. 이정도 말할 수 있는 경험만 얻은 것이죠.


제 박살나버린 루틴이 너무나도 아깝고, 제가 한심한 3일입니다. 좋게 생각해보려해도 그저 면접에서 증거 없이 써봤다 라는 말만 할 수 있는 것밖에는 장점이 없습니다. 할 필요없는 고민까지 합니다. 개발자가 정말로 제게 맞는지를요. 세상에는 개발자가 천직인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아직까지는 일로 하는 개발까지 사랑하진 못합니다. 뭘 직장에 그정도까지의 애정을 갖길 원하냐 싶지만 취직이 안되는 지금으로서는 나의 문제를 군데군데에서 애써 찾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취업난을 회피하는데에는 그 앱 만들기 프로젝트가 딱이었어요. 이제 곧 공채입니다. 저는 다시 정신과에 다닐까 고민하면서도, 그정도는 아니지 생각합니다. 나만 힘든 거 아니잖아요. 모두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지 저한테서 문제를 찾는 자학을 멈춰야지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회피의 3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다시 루틴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한 채로 계속 살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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