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백합니다 12

다시 시작

by 산넙치

2월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제야 확인합니다. 지금은 10월이고, 반년이 훨씬 넘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그동안에도 웃기게 취업을 못했습니다. 12월의 계엄 이후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그 핑계를 대기에도 지금은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4월까지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길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다 가결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소심하게 지른 이후로 저는 그나마 희망에 차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4월에는 다시 직업 교육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4, 5월에는 취직할 줄 알고 혹시 취직을 못할 때를 대비해서 들어갔는데, 저는 지금까지도 백수입니다. 중간에 잠깐잠깐 알바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 눈이 쓸데없이 높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그동안 사실 제가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정확히는 사회에 뛰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나 친해지는 과정을 좋아하면서도, 면접이나 상사를 만나야 하는 일을 겁내하고 있었습니다. 7월에는 대기업 면접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말실수를 한 이후로 아마 작게 트라우마가 손톱 조각만큼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날은 정말 무슨 액땜의 날인가 싶었습니다. 회사에서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언니의 구두가 아프게 제 발을 물고 있었습니다. 입구에는 우산을 접으며 오는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입니다. 저는 우산이 없어 냅다 빗 속을 뛰어듭니다. 집에 얼른 가고 싶었습니다. 터널을 지나며 눈물이 고이다가 맙니다. 면접은 즐거웠습니다. 다만 제가 얼마나 못했는지가 체감되어 제 자신이 한심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갈아타야 할 정거장보다 하나를 더 가버리고 맙니다. 제 면접 소식을 도움을 주신 분께 전하다 벌어진 일입니다. 어느새 비는 언제 왔다며 구름이 싹 사라지고 태양빛이 제 화장이 녹은 얼굴과 팔을 찔렀습니다. 아픈 발을 애써 모르는 척하고 정거장이 보일 때쯤, 지나가는 40분 배차 버스. 눈물이 다시금 고인 것은 서러워서였을 겁니다. 정거장이 좀 더 가까워지자 제가 타야 하는 것은 반대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급하게 멀리 있는 횡단보도로 가는데, 진짜 제가 타야 하는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봅니다. 제 특기라고 하면 후회입니다. ’ 방향을 제대로 볼걸.‘ 후회가 밀려온 채로 집에 갔고, 얼마 안 가 불합격 소식을 접했습니다.


중간에 중소를 넣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제 스펙보다 높은 회사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취업이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유니콘 기업의 과제 전형을 볼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6시간이 넘는 시험이었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군것질을 겨우 끊었는데, 머리를 굴리려고 쫀득 쿠키도 처음 사 먹었던 것 같습니다.(맛은 없었습니다.) 필사적으로 봤지만 떨어졌습니다. 저는 거기서 제 능력이 거기까지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뇌가 멈춰버렸던 것 같습니다. 핸드폰으로 온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접하자, 그냥 침대에 누워 1시간을 울다가 기절하듯이 자고, 겨우 가족들이랑 밥을 먹으면서 마음을 풀었습니다. 그렇지만 며칠은 사람인이나 취업 사이트는 눈에 들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에도 제가 졸업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고 이제는 회사가 저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뭐가 그렇게 힘들까 싶었어도, 아마 지금 거의 희미해진 졸업 프로젝트의 고생 정도 힘들었겠죠. 너무 힘든 나머지 베란다의 난간 위에 서서 제 몸무게를 버티지 못한 난간이 갑자기 부서졌으면 하고 바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제가 제 스펙으로 뻔뻔하게 안정적인 수입을 바라듯이, 회사도 뻔뻔하게 높은 스펙을 요구할 수도 있겠죠. 제가 이기적으로 구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완벽히 준비하고 완벽히 맞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어쩌면 더 높은 회사를 준비 없이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지 모릅니다. 저는 모르는 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렵던지, 제 위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 탓에 사회문제에는 약간 소홀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계속 찾아보려면,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을 전하려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잘 살려면 가끔은 생각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실수하나로 죽음까지 생각한 적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정도로 많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생각을 비우려고 생각하다 보니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힘들 때는 도파민이 도는 쇼츠 같은 것들을 즐깁니다. 머리가 멍청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더 깊은 생각을 안 하고 휴식한 뒤 해야 할 일로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중독되면... 답은 없습니다. 중독이 끝나길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다행히도 뭐든 일찍 질리는 편이라 게임 중독과 쇼츠 중독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멍청해진 머리를 가지고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어봅니다. 하나는 연락이 오겠지. 안 온다면 다시 넣으면 되지.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깊은 곳에서는 제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돌에 낀 이끼처럼 딱 붙어서 불어나지만, 그걸 세세하게 보다간 도전도 못하고 맙니다.


요새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뜨개질도 하고, 노래도 듣고, 책도 읽고, 직접 써보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탓에 할 일을 못하지는 않을까 싶지만, 걱정은 뒤로 미루고 닥치는 대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뻘 소리를 해보자면, 취미는 참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완성을 한없이 미룰 수 있으니까요. 더 중요한 일을 하느라 완성을 못했다는 핑계로 어디까지나 미룰 수 있고, 가끔 생각날 때 하면 재미있어서 고통을 잊기에 딱 좋습니다.


요즘이 너무 힘들다면 뜨개질 취미를 추천합니다. 첫 고비만 넘긴다면, 눈에 바로바로 보이는 매듭들이 쇼츠만큼이나 도파민을 줄 수도 있습니다. 완성품을 자랑할 수도 있고요. 저는 자랑을 좋아하는 터라 꽤 뿌듯했습니다.


다시 여기로 오고 싶었습니다. 가족만큼이나 솔직해지는 곳이 여기인데, 왜 여태 오지 않았을까요. 다음 글 쓰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와서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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