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튀르키예어에 힘들어한다는 것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영은은 유난히 그날따라 꽉 차 무게에 크게 흔들리는 지하철 내에서 생각했다. 이것이 질렸다고 그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끝이 안 보이는 취직의 길에서 영은은 직업 훈련을 선택했다. 듣는다고 직업을 얻을 수도 없었지만, 직업 훈련이라는 말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서 1시간 반의 거리를 정확히 출퇴근 시간에 다녀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정확히 힘들었던 것은 프로그램으로 성장하는 자신을 보면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들지 않는 것과, 일자리를 찾더라도 자신은 똑같이 이 시간에 이 시간 동안 출퇴근을 해야 하며, 지하철에서 고개만 살짝 돌려도 보이는 시체와도 같은 직장인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힘들어하며 얻는 것이 결국은 힘든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눈물이 새어 나오려는 순간 열차가 다시금 흔들린다. 사람들이 손잡이를 잡고 지탱하고 있음에도 파도처럼 자신의 몸 위로 밀려온다. 더욱 서러워지려 하면 뒷 남자의 배가 자신의 등을 치고 가방이 엉덩이를 건드린다. 그 순간 영은의 눈이 건조해진다. 언제 울려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영은은 자신을 짓누르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그 모서리로 남자의 관자놀이를 찍는 상상을 한다. 한번 부딪힌 이후로 계속해서 닿아오는 남자의 후덥지근한 피부를 덮은 와이셔츠 천과, 아예 엉덩이에 손을 얹듯이 붙어있는 가방이 불쾌해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한 번 크게 몸을 흔들어도 옆에서 불편해하는 사람과 다시 붙는 가방과 몸이 마치 기름덩어리를 몸에 문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영은은 그 접촉이 성추행인지 알 수 없었다. 학생 시절 붐비던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자신의 허벅지 사이를 만지고 간 늙은 이의 손이나 넓은 차 통로에서 대놓고 가슴을 치고 가는 남자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럼에도 그 남자를 죽이고 싶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접촉에도 자신의 불쾌감을 상기시켰으며, 무엇보다 영은은 취업 스트레스로 무언가를 패고 싶었다.
영은은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련할 정도로 비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자신 외에는 화를 내본 적 하나 없으며 자신을 만지고 간 남자에게 손찌검은커녕 큰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그녀도 이러한 자신에 환멸을 느낀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녀가 그녀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것이 나타나고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성인이 되면서 그녀는 화가 날 때마다 자신의 방 발코니에 있는 커다란 옷서랍 위로 올라갔다. 너무 무거우면서 단단하고, 작은 방에 넣기에는 너무 큰 옷 서랍 위에는 큰 창문이 위치해 있어 만약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연다면 그녀는 상체를 그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벌레가 들어올 텐데도 그 옷서랍 위에 올라가 창문으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 몸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화가 식지 않으면 키보드나 마우스를 집어던져 힘들게 페인트 칠한 방 벽에 흠집을 내고, 베개를 가위로 찌르곤 했다. 그녀가 여태 살아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죽을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었고, 행복한 시간이 약간만 주어진다면 잊을 수 있는 어이없는 기억력 탓이었다.
영은은 일반적이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특이한 것은 여행을 많이 간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경험 속에서 그녀의 심장을 울릴 무언가를 찾으면 감명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영은은 그 순간마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순간에 남아 앞으로의 고된 시간을 생각하기 싫었다. 그러한 시간으로 걸어가는 것도 꺼려졌다. 너무나도 행복한 탓에 후의 스트레스로 이를 잊고 지나간 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영은은 차마 그런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가슴 위에 두 손을 얹으며 지나가는 농담으로 "나 왜 울어..." 하며 엄살을 부렸다.
Merhaba. 마이크를 꺼놓고서는 수업이 시작할 때마다 영은은 읊조렸다. 영은은 백수인 덕분에 무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튀르키예어 강의였다. 괄호를 치고 '터키어'라는 말도 쓰여있었지만, 옛날에 본 것 같은 튀르키예가 더 알맞은 말이며, 거기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는 말에 영은은 매주 강의를 달력에 적으면서 꼬박꼬박 '튀르키예어 수업'이라고 적었다. 여러 외국어 수업 중에서도 튀르키예어를 선택한 것은 단순했다. 한 유튜버가 튀르키예를 여행한 것을 본 것이다. 그 여행지는 다른 여행지보다 잿빛이고, 평범해 보였지만 유튜버가 길거리에 널려있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모습이 영은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영은은 수업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모두 취직 준비와 취직 준비에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놀랍게도 지인을 만나는 것도 이에 포함되고 있었다. 그 모든 시간과 구분하는 것과 별개로 수업은 힘들었다. 전혀 모르는 언어를 알파벳부터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영은은 자신이 현실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튀르키예어에 힘들어한다는 것에 환호했다. 가끔 금요일에까지 수업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의 애정이었지만, 그녀는 튀르키예어 수업을 사랑했다.
"너 그런데도 위험하고 그런 건 알지? 우리나라가 제일 안전하다니까."
"그치. 근데 가고 싶어."
사실 영은은 이미 혼자 가는 유럽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아주 작은 자갈을 던지며 네 나라로 가라고 하는 아이들, 원숭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남자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하며 갑자기 목적지를 바꾸었던 기차. 잘 모르는 곳에 떨어지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 것인가. 비행기에서 내려 첫 숙소에 가기까지 6시간이 걸렸던 그녀가 제일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가고 싶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좋아진 한국이 그녀에게는 많이 좋아지지는 않아서, 가까운 자신의 미래도 너무나 무서워서, 앞으로의 미래에 잘 버티고 있을지 몰라서, 지금의 세상에서 버티려면 그녀 자신과 지하철 안에서 그녀에게 닿는 남자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불안해보고 싶어서 영은은 무슨 녹음기 들은 곰인형처럼 친구의 앞에서 반복해 말하기만 했다. 나는 튀르키예로 가고 싶어.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문법만 진행하진 않았다. 단순히 튀르키예의 주변 국가와 수도 등, 또 튀르키예에서 부르는 오드아이 고양이와 특별한 종의 강아지. 튀르키예의 여러 도시. 영은은 잠시 넋을 놓고 보다가 강사의 부름에 대답하지 못하곤 했다. 넓은 바다에서 먹고, 쉬고... 강사의 지나가는 말이 영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순히 먹고 쉬는 것만을 원하진 않았다. 거기서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머리에 쿠키를 뿌리는 아이들이나 성희롱을 하는 아저씨는 여전할지는 몰라도, 튀르키예인데. 그곳에서 영은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이미 유럽을 갔다 와서 그러지 않았음을 알았는데도. 자신의 지인들을 모두 다른 나라에 둔 채 살아갈 것 같았다. 그녀의 지인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며, 그녀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음에도 그랬다. 지나가면서 본 '리셋증후군'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영은은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영은은 게임을 끝까지 하는 법이 없었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완성도 있게 올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 같으면 게임을 완전히 리셋하고 다시 시작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시작하게 되면, 금방 지겨워지는 탓에 게임을 삭제해 버렸는데, 이따금 그녀는 상상했다. 내 인생도 이러할까. 인생의 리셋이 어렵지 않았다면 분명 그녀는 몇 번이고 리셋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해서 그녀는 자신이 벌인 일을 수습하며 간신히 살아왔다. 그런 자신도 튀르키예에서는 없을 것 같은 허황된 상상에, 그녀는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지나갈 사람에게도 튀르키예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저 이 말도 배웠어요. Merhaba.' 뒷 말도 붙이고. 용돈만 받는 계좌는 잘못된 씀씀이 때문에 비어있다. 아마 흔들 수만 있다면 동전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만 날 것이다. 서울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는 비행기 비용, 가려면 카메라도 들고 가야지. 하고 싶었던 걸 거기서 잔뜩 해야지. 그녀는 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 튀르키예에 갈 것이다. 그리고 튀르키예에 가기 위해서 현실에서 살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