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40

샴페인 여행

by 신경한

학교 수업은 모두 끝나고 이제 마지막 와이너리 투어인 샴페인 여행. 기말고사와 인턴십이 남아 있어 아주 홀가분한 마음만은 아니다. 6개월이 이렇게 금방 지났다는 아쉬움도 있고.

첫날 세 곳의 샴페인 하우스를 방문했다. 테탕저와 앙리 지로, 그리고 빌카르 살몽. 다들 유명하기도 하지만 각자 나름의 역사와 철학이 있어서 좋았다. 그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와인 중 가장 저렴한 넌빈티지 샴페인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자기들의 정체성이라고 하며. 비싼 샴페인만 좋아하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테탕저의 철학은 밝고 신선하면서 순수하고 단순한 샴페인. 복잡한 생각 집어던지고 샴페인 한잔과 함께 상쾌하게 시작하자는 것. 앙리 지로는 자연을 담은 샴페인. 자신들이 직접 기른, 아라곤 숲 오크통으로 샴페인을 숙성시킨다. 빌카르 살몽의 철학은 오너 4대가 찍은 사진에 담겨 있었다. 거의 100세가 되어서까지 와인을 즐기며 변하지 않는 최고의 품질을 위해 조언을 한 앙투완. 내 버킷 리스트가 하나 더 생겼다.


다음날은 샴페인 살롱을 방문했다. 건물에 대여섯 개의 국기가 걸려 있는데 태극기가 보인다. 다들 내가 오는 줄 알고 그런 거란다. 오늘 안내는 이승화 씨. 와인 양조학을 공부하고 이곳에서 고객담당 업무를 맡고 있다고. 르꼬르동 블루 입학 후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인이다.


샴페인 살롱, 애호가들에겐 최고로 꼽힌다고 한다. 26살에 백만장자가 된 살롱이 자기 스타일의 샴페인을 만들려고 설립했다고. 가장 좋은 포도밭에서 샤도네이 100%로. 그 해 포도로만, 달지 않게, 그리고 소량만 생산. 마니아층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음을 시작하는데 잔이 독특하다. 잔 내부 아래쪽에 살짝 스크래치가 있단다. 거품이 잘 올라오도록 하기 위해. 2015 살롱. 막 깎은 잔디향이 살짝 스치더니 향긋한 꽃과 과일향, 그리고 구운 빵과 견과류 향이 순서대로 올라온다. 한 모금 마셔보니 산미와 부드러운 크림이 아주 촘촘한 그물처럼 겹쳐져 있다. 오래 숙성해도 훌륭할 듯.


다음으로 란스롯 피엔. 언덕 위에 있어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아주 좋다. 스테인리스와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와인을 비교 시음한 후 시음실로 이동. 나보고 세이버 오프닝을 해보라고 한다. 샴페인 목의 약한 부분을 칼로 쳐서 마개를 날리는, 나폴레옹 시대에 유행하던 방법. 뻥 소리와 함께 코르크가 멀리 포도밭으로 시원하게 날아간다.


저녁 식사를 하며 지난 6개월에 대한 소감을 한 마디씩 이야기했다. 가장 나이 어린 스무 살 후환 차례. 자기는 삶에서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릴 보면서 많이 배우고 느꼈다고 말한다. 르꼬르동 블루 요리과정을 마치고 와인 과정도 배우고 있는 친구. 페루에서 훌륭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다고 한다. 어제저녁에도 내게 비슷한 말을 했다. 나이 들어서도 나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고. 내가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You can do it. 진심이었다. 남미 여행,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마지막날 첫 방문지는 얀 알렉산더. 아주 작은 규모지만 훌륭한 샴페인을 만드는 곳이다. 지난가을 서울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왔을 때 친절하게 맞이해 준 세브린이 내게 반갑게 인사한다. 모두에게 포도밭과 셀러 곳곳을 안내하다가 오크통 하나를 가리킨다. 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정성스럽게 돌보던 아라곤 숲의 나무로 만든 오크통이란다. 그 통에 자신들이 만든 와인이 담겨 숙성 중이라고.


에페르니의 샴페인 거리. 길 양쪽에 모에 샹동을 비롯한 유명한 샴페인 하우스가 즐비하다. 가장 멋진 곳은 페리에 주에. 내겐 아주 소중한 사연이 있는 곳이다.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토머스가 샴페인을 오픈한다. 내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 기차에서라도 마지막 샴페인 한 잔 해야 한다고. 마셔도 되나 하는데 맥심이 먼저 병째로 마신다. 입구는 냅킨으로 닦아가며. 역시 프랑스다. 샴페인 병이 세 바퀴를 돌았다. 마지막은 내가 bottom up. Thank you, guys.

귀국 비행기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멀리 인천공항이 보인다. 6개월 전 파리에 도착한 첫날밤, 에펠탑을 바라보며 느끼던 똑같은 감정이 든다. 감사함. 이젠 원래 자리에서 또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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