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음식 페어링
"Who jumps in? I'm listening."
르꼬르동 블루 와인 수업. 와인 산지별로 90분 강의 후 10종류 정도의 와인을 시음한다. 한 명씩 돌아가며 발표하고 이후 같이 토론하는데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맥심이 이렇게 말하면 아무나 뛰어들면 된다. 물론 약간의 눈치 싸움이 있다. 모두 쉬운 걸 발표하고 싶어 하니까.
테이스팅은 눈(시각), 코(후각), 입(미각)의 평가와 결론으로 이루어진다. 결론에는 서빙 온도와 디캔팅 유무, 숙성 잠재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 그리고 어울리는 음식 두 가지.
내겐 음식 페어링이 제일 힘들었다. 프랑스 요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니 우리말로 번역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리 방법도 다양하고 소스 종류도 정말 많고.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걸 떠올려 발표해야 한다니. 처음에는 그냥 공식대로 했다. 화이트 와인은 생선이나 해산물, 레드는 육고기, 당분이 있는 와인은 디저트.
그런데 와인과 요리에 대한 지식이 조금씩 쌓여 가니까 페어링이 재미있어졌다. 곁들이는 음식과 소스의 중요성도 깨닫고. 요샌 서양 음식과 한국 음식을 한 가지씩 발표한다. 김밥, 떡볶이, 불고기 등은 이젠 전 세계 음식이라, 가능하면 잘 모르는 음식으로. 소개도 할 겸. 몇 번 칭찬도 받았다.
청피망과 미네랄 향이 나는 상세르에 멜국을 페어링 했다. 향기롭고 부드러운 론 지역 화이트 와인에는 신선로. 거친 흙향이 나는 보졸레 가메와는 버섯 비빔밥. 그리고 머스캣으로 만든 주정강화 와인에 엽떡, 물론 가장 덜 매운 단계로. 단맛이 맵고 자극적인 맛을 완화해 준다.
음식과 와인 페어링에 절대적인 법칙은 없다. 다만 찾는 방법이 크게 3가지. 먼저 테루와 페어링. 같은 지역의 음식과 와인은 기본적으로 잘 어울린다. 그리고 조화형 페어링. 향이나 맛, 식감 등에서 비슷한 게 많을수록 잘 어울리는 건 당연. 근데 이 두 조합은 너무 안정적이어서 좀 재미가 없다.
다들 찾고 싶어 하는 페어링은 대조형. 서로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조합. 공통된 끈으로 살짝 연결되어 각자의 개성이 확확 살아나는 것.
지난 금요일 점심에 학교 주방에서 마지막 페어링 실습수업이 있었다. 셰프가 디저트로 다크 초콜릿 케이크를 준비했고 와인은 내가 미리 주랑송을 선택했다. 며칠 전 수업에서 시음한 와인인데 연기, 가죽 향과 함께 단맛, 입안을 감싸는 미끌거림이 살짝 있어 다크 초콜릿과 잘 어울릴 듯했다. 프랑스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이자 현재 에어 프랑스 수석 소믈리에인 자비에가 생각지 못한 기막힌 조합이라고 극찬을 한다. 다크 초콜릿과 와인 페어링은 정말 어렵다고 하며.
사실 1월 초 와이프 먼저 귀국한 후 열심히 와인 공부를 했다. 이론 공부도 하고 내가 쓴 노트를 보며 시음 복습도 하고. 저녁마다 집에서 다양한 음식과 와인 페어링을 테스트해 보고. 이제야 실력이 느는 것 같은데 일주일 후면 나도 귀국해야 한다. 혼자 지내는 게 외롭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
헤밍웨이가 쓴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본 내용이 떠오른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 나 아직 젊다. 그리고 지난 6개월은 정말 감사한 행운이었고. 아쉬워할 것 없다. 앞으로 파리는 평생 내 곁에 머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