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손
가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 생활 30년이 넘었으니 많은 환자분들이 떠오른다. 좋은 결과도 있었고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1995년 3월 내가 주치의로서 처음 떠나보낸 환자 역시 잊히지 않는다. 60대 중반 여성 환자였는데 위암 말기로 복수가 많이 차고 위중한 상태였다.
처음 간 회진에서 나에게 일주일 뒤 하나뿐인 딸 결혼식에 꼭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유일한, 마지막 소원이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주삿바늘로 엉망이 된 손에서 느꼈던 간절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 곱게 한복을 입고 결혼식에 무사히 다녀오셨고 이틀 뒤 숨을 거두셨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2층에도 간절한 손이 있다. 로댕의 지옥의 문 오른쪽에 있는 청동 조각. 한 젊은 여성이 무릎을 꿇고, 떠나가는 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애원하는 눈빛과 내민 손이 너무나 간절해서 보는 나까지 가슴이 아프다. 남자는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들고 있고, 더 나이 든 여자에 의해 어디론가 이끌려 가고 있다.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이다. 24살 차이의 로댕과 클로델은 스승과 제자에서, 동료 예술가로, 연인으로 지냈지만 결국 로댕은 평생 자기 곁을 지킨 로즈 뵈레 곁으로 떠나가고 클로델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작품을 조각하면서 클로델의 심정은 어땠을까? 훌륭한 작품은 꼭 이런 커다란 아픔을 겪어야만 나오는 걸까?
로댕 뮤지엄에는 로댕이 조각한 간절한 손이 있다. 제목은 ‘성당’. 서로 맞대고 있는, 갈구하는 듯한 간절한 두 손. 처음 봤을 때 한참 후에야 둘 다 오른손임을, 두 사람이 손을 맞대고 있음을 깨달았다.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있던 딸아이가 폴란드 친구와 여기에 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의대생이던 그 친구가 성당 작품 앞에서 자기도 이걸 가지고 있다고 말했단다.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조그만 모형을 자신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어린 자식을 남겨 놓고 먼저 떠나는 부모의 심정, 떠나서라도 항상 곁에서 지켜주고 싶은 그 간절한 기도. 30년 전 내 손을 꼭 잡던 위암 환자분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