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37

아이슬란드 여행

by 신경한

이틀간 학교 수업이 없어 4일의 시간이 생겼다. 마지막 여행지로 시칠리아, 모로코, 아이슬란드를 놓고 고민하다가 아이슬란드로 결정.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지난번 노르웨이에서 실패한 오로라 사냥을 위해서. 더 중요한 이유는 지금 내겐 겨울옷밖에 없다는 것.

레이캬비크에 도착해 호텔 체크인을 하고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본다. 여기도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저녁 9시 출발하는 오로라 투어. 아이슬란디아라는 가장 큰 회사에서 하는 버스투어인데 오로라를 보지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면 언제든 무료로 다시 예약할 수 있단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으로 이동. 정말 맑은 하늘.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환하게 보인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인 듯. 오로라 관찰엔 방해가 되겠지만 보름에 가까운 달도 참 예쁘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오로라가 북쪽 지평선 근처에 나타났다. 잠시 후 북동쪽 하늘에서 살짝 춤추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커내 찍으려는데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는 잠잠.


다음날은 혼자 레이캬비크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국립 박물관에서 아이슬란드 역사에 대한 전시를 보고 레이캬비크 공립도서관으로. 때마침 1층 라운지에서 몽골 음악 공연을 한다. 젊은 음악가가 몽골 전통 복장을 입고 현악기 연주와 함께 독특한 목노래를 부른다.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의 힘을 경험하는 나라여서 토템에 대한 심리적 연결이 더 많은 것 같다.

아이슬란드 내셔널 갤러리. 나무로 만든 보트 위에 노 젓는 조정 운동 기구가 있다. 안내판이 있어서 당연히 만지지 말라는 것인 줄 알았는데, 편하게 노를 저어 보라는 내용. 잠깐 고민하다가 앉아서 노를 저으니, 파도치는 바다 한복판에서 앞으로 나가는 영상이 벽 전체에 뜬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제일 마음에 든 그림은 precipitation, 강우. 척박한 아이슬란드 땅에 내리는 보슬비 느낌이다. 하지만 조만간 엄청난 폭풍우로 바뀔 것 같다. 아름다운 만큼 두렵다. 오로라가 막 나타날 때의 회색빛 느낌도 나고, 그림 주변 조명과도 참 잘 어울린다.


아이슬란드 자연을 볼 수 있는 골든 서클과 남부 해안은 투어를 예약해서 다녀왔다. 싱벨리어 국립공원, 간헐천과 폭포들, 검은 해변과 솔헤미아 요쿨 빙하. 그리고 최근 화산 활동으로 용암이 분출된 지역도. 척박한 얼음과 불의 땅, 현재도 진행 중인 지질학의 살아있는 교과서란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중간에 가이드가 하얀 집 하나를 가리킨다. 195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이슬란드 대표작가인 할도르 락스네스의 집이라고. 대표작은 '독립적인 사람들 (Independent people)'. 거친 자연 속에서 고립된 삶을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그린 작가라고 한다.

점심으로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최고였다. 두툼한데도 아주 부드러웠고. 화산섬인 시칠리아 네로 다볼라 와인과도 잘 어울렸다. 투어의 마지막은 블루라곤 야외 온천. 한겨울 야외 온천이니 안 좋을 수 없다. 사우나도 하고, 실리카 팩도 하고.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저녁엔 다시 오로라 사냥에 합류. 사실 혼자 호텔에 있으면 뭐 하겠나? 술을 마시거나 스마트폰이나 보겠지. 가이드가 오로라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현지어 하나를 가르쳐준다. 쎄타 레다스트.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란 의미라고. 라이언킹에 나오는 하쿠나 마타타의 아이슬란드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단다.

가이드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좀 덜 추운 듯하다. 역시 힘든 걸 견딜 때는 동료가 필요한 법. 오늘도 오로라는 잠깐 희미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늘은 정말 맑은데 태양풍이 도와주지 않는다.

친구가 안부를 물으며 왜 다들 힘들게 고생하며 오로라를 직접 보려 하는 걸까 묻는다. 인터넷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데. 글쎄, 난 오로라를 보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 아이슬란드의 '독립적인 사람들'처럼 추워서 덜덜 떨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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