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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파워게임|임계질량을 넘지 못한 해운 블록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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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교역의 90%는 해운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화물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평균 200개 이상의 문서와 최대 50개의 이해관계자가 관여한다. 이로 인해 서류 작업에만 전체 운송 시간의 최대 20%가 소요된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비효율을 해결할 수 있다. 디지털화된 서류를 실시간으로 공유하여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종이 서류로 인해 발생하는 지연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또한, 화물의 위치 추적을 정교화하고,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여 물류 효율성을 최대 50%까지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이에 따라 2016년 당시 1위 해운사 머스크(Mearsk)는 블록체인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BM과 트레이드렌즈(Tradelens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식 출시 4년 만에 머스크는 공식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혁신적인 기술로 각광받는 블록체인은 강력한 보안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에서 각광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약 90%는 트레이드렌즈의 사례와 같이 상용화에 실패했다. 신기술의 도입에는 기술적 요인 외에도 전환 비용과 경쟁 관계와 같은 수 많은 현실적인 요인들이 얽혀있다. 특히, 블록체인은 기존 플레이어들의 파워게임에 대변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시장의 힘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10%의 성공한 프로젝트가 될 수 없다.


파워게임 체인저,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여러 참여자가 데이터를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분산 원장 방식을 통해 보안과 투명성을 확보한다. 거래가 블록으로 만들어지면, 이 블록은 네트워크 내 모든 참여자에게 전송된다. 각 참여자는 해당 기록의 유효성을 검증하고 승인하며, 유효성이 입증된 블록은 암호화되어 체인처럼 연결된다. 이렇게 한 번 추가된 기록은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데이터의 위변조를 막아 보안성을 확보한다. 동시에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기록을 공유하고 열람할 수 있어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한다. 이 위에 '스마트 계약'이라는 기능이 추가되는데, 이는 사전에 정해진 조건이 충족되면 중개자 없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디지털 계약으로, 효율적인 거래가 가능해진다.


해운 산업에서는 화물 선적부터 통관, 운송, 최종 도착까지의 모든 과정을 단일화된 디지털 원장에 기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하증권과 같은 중요한 서류를 디지털화하여 블록체인에 등록하면,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서류를 신뢰할 수 있으며, 이로써 위조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화주, 운송사, 항만, 세관 등 각기 다른 주체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어 데이터 불일치로 인한 혼란과 지연을 없어진다.


스마트 계약은 해운 거래의 자동화를 가능하게 한다. 사전에 코딩된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므로, 수많은 수작업과 중개자가 필요했던 기존의 절차가 간소화된다. 예를 들어, 화물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정보가 블록체인에 기록되면, 스마트 계약이 자동으로 운송비용을 지급하거나, 지연 배송에 대한 벌금을 부과한다. 이는 계약 이행의 투명성을 높이고, 수동적인 절차로 인해 발생했던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감한다.


화주들은 컨테이너의 위치뿐만 아니라 온도, 습도 등 상태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운송 중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항만 운영자는 도착 예정 화물의 정보를 미리 확인하고, 하역 작업과 창고 배치를 효율적으로 계획하여 항만 운영의 병목 현상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실시간 정보 공유는 공급망 전반의 가시성을 높여 물류 관리를 더욱 예측 가능하고 효율적으로 만든다.


서류 비용 20% 절감, 운송 시간 40% 단축, Tradelense

트레이드렌즈는 IBM 클라우드의 하이퍼레저 패브릭을 활용한 허가형 블록체인으로,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비트코인과 다르다. 모든 참여자의 신원이 명확히 확인되는 신뢰 앵커 역할을 통해 상업 거래에 필수적인 보안과 신뢰를 보장한다. 트레이드렌즈는 발행 및 구독 방식을 통해 물류 데이터를 관리한다. 즉, 각 주체가 자신의 역할에 맞는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권한이 있는 다른 주체들이 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덕분에 모든 참여자는 단일 정보를 공유하게 되어 데이터의 위변조를 원천적으로 방지한다.


트레이드렌즈는 크게 네 가지 기능으로 구성된다.


첫째, 실시간 화물 추적 기능

IoT 센서와 각 주체가 발행하는 이벤트 정보를 통합하여 화물 이동의 모든 단계에 대한 세분화된 가시성을 제공한다.


둘째, 문서 디지털화 및 공유 기능

중요 서류를 디지털화하고 그 해시값을 블록체인에 기록하여 위변조를 막고, 필요한 사람만 문서를 열람하도록 엄격한 권한 설정이 가능하다.


셋째,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프로세스 자동화

사전에 설정된 조건이 충족되면 운송료 지급, 통관 서류 승인 등이 자동으로 실행되어 수동 절차로 인한 오류와 지연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마지막으로, 개방형 API와 산업 표준 준수

이는 제3자 개발자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기존 시스템과의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된다.


이를 통해 화주는 실시간으로 화물을 추적하고 비용을 검증하여 재고 관리를 최적화할 수 있으며, 선사는 서류 작업의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또한, 항만은 운영 효율을 높이고, 세관과 같은 정부 기관은 위험 평가와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면서도 불법 거래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트레이드렌즈는 이상적으로 해운 업계에 도입된다면 문서 작성 비용을 20% 절감하고 운송 기간을 40% 단축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블록체인의 KSF, 네트워크 효과

네트워크 효과란 특정 서비스나 플랫폼의 가치가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Tradelens의 경우, 더 많은 해운사와 기관이 참여할수록 플랫폼에 기록되는 데이터가 풍부해지고, 이는 곧 화물의 종단간 가시성과 신뢰성을 높여 플랫폼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반대로, 충분한 참여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플랫폼은 불완전한 데이터만을 제공한다. 따라서 블록체인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임계치 이상의 플레이어가 블록체인에 참여해야한다. 이 임계 질량을 넘지 못하면, 블록체인의 정보는 무의미해진다.


정리하면, 블록체인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그 정보에 가치가 있으려면 참여자가 충분해야한다. 블록체인에 참여하려면 자신의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 기존 힘있는 플레이어들은 독점 정보를 공개하기 싫어한다. 블록체인이 성공하려면 이 키 플레이어들을 설득하여 임계질량 이상의 정보를 확보해야한다.


트레이드렌즈를 예로 들면 쉽다. 특정 화물의 운송과정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가 트레이드렌즈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데이터는 도중에 끊기게 되어 전체적인 물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처럼 데이터의 사일로 현상이 계속되면 플랫폼의 가장 큰 장점인 단일 정보가 무의미해지고, 참여자들이 기대했던 이익을 얻기 어렵다.


머스크는 임계질량을 **50%**로 봤다. 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선사들이 참여했야 비로소 플랫폼의 편익이 막대한 통합 비용을 상회했을 것이라고 봤다. 이는 단순히 참여 기업의 수가 아니라, 시장 점유율이 높은 핵심 주체들의 참여가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트레이드렌즈 출시 초기에는 당시 1위 머스크(19.4%) 2위 MSC(14.1%), 3위 CMA-CGM(12.3%) 그 외 ZIM, PIL 이 참여하며 대략 50%가 조금 넘는 수준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10대 해운사 중 절반 이상이 참여를 주저하거나 이탈하면서 플랫폼은 불완전한 데이터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트레이드렌즈는 출시 4년만인 2022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실패가 해운 산업의 특성을 고려했다면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는 점이다.


해운산업의 KSF, 경기 민감성과 공급 비탄력성 잡는 데이터

해운 산업은 세계 경제의 동향에 매우 민감하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물동량이 늘어 해상 운임이 상승하며 큰 수익을 얻지만, 불황일 때는 물동량이 급감해 운임이 하락하고 공급 과잉에 시달린다. 해운 산업에는 주기적인 호황과 불황 사이클이 있다. 또한 해운 산업은 공급이 비탄력적이다. 선박 건조에는 평균 2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더라도 공급을 즉각적으로 확대할 수 없다. 반대로 수요가 감소하더라도 이미 건조된 선박들을 운행 중단하거나 폐선하는 데 한계가 있어 공급 과잉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이러한 공급의 비탄력성은 운임 변동성을 더욱 크게 만든다.


데이터를 활용하면 이러한 경기 민감성과 공급 비탄력성을 완화할 수 있다. 세계 경제 전망, 주요국의 경제 성장률, 유가, 물가 변동 등 거시 경제 변수에 대한 정보는 물동량 변화를 예측하는 핵심이다. 이를 통해 선사는 운임 하락기를 대비해 선박 운항을 축소하거나 노후 선박을 조기 퇴역시키는 등 선제적으로 공급을 조절할 수 있다. 또한, 선박 건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공급의 비탄력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해운사들은 선복량(선박의 화물 적재 능력)과 신조선 인도 계획에 대한 정보를 민감하게 다룬다. 이를 통해 공급 과잉 시기를 예측하고 신규 선박 발주를 조절하거나, 동맹(얼라이언스)을 통해 다른 선사와 선박을 공유하며 효율을 높인다. 심지어 해운사들은 AI 기반 시스템을 활용하여 풍향, 조류, 연료 소비량 등 실시간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의 운항 경로와 속도를 계산하여 연료비를 절감하고, 운임 변동성에 대응하여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즉, 해운산업에서 데이터는 경쟁우위의 원천이다.


현재 해운 산업에는 정보의 불균형이 심하다. 매우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으며, 각 주체들이 경쟁과 협상을 위하여 정보를 철저히 비공개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정보의 틈을 파고든 ‘브로커’도 많이 있다. 선박 중개, 대리, 해상 보험, 해상화물운송주선업자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해운 데이터가 블록체인으로 투명해지면 이 브로커들은 직업을 잃고, 독점 정보를 보유한 해운사들은 경쟁우위를 잃게 된다.


해운산업의 KSF, 과점을 만드는 규모의 경제

정보를 독점한 플레이어가 반대하더라도 그 외의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치면 블록체인은 임계질량을 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해운 산업의 특성이 발목을 잡았다. 해운사는 배가 크고 많을수록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대형 해운사만 살아남고, M&A를 통해 작은 해운사들을 합병하면서 시장에는 소수의 대형 플레이어만 남게 된다. 그래서 현재 시장은 소수의 대형 선사들이 동맹 형태로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과점 시장이 되었다. 민주화 운동이 성공하려면 시민들이 결집하고 힘을 모아야 하듯, 블록체인으로 정보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운산업에는 강한 자만 살아남아 민주화를 원하는 소형 선사가 없다.


이러한 질문이 들 수 있다. “당시 1위 머스크는 왜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면서까지 블록체인을 시도했을까?” 머스크는 트레이드렌즈 프로젝트를 발표한 2016년 당시 MSC와 치열하게 1,2위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비젼은 달랐다. MSC는 컨테이너 해운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한 ‘선대 확장 전략’을 추구한 반면, 머스크는 오랜 해운 사업 역량을 기반으로 **‘종합 물류 기업’**을 표방했다. 머스크는 자산 중심의 해상 운송에서 벗어나, IT 물류 솔루션, 창고, 트럭, 항공 화물 운송 등을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투자하며 운송주선(forwarding) 영역까지 확장하여,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End-to-End 솔루션을 제공하여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기 위한 여정에서 블록체인은 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핵심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하게도 당시 동맹 관계였던 MSC를 포함한 경쟁 선사들이 이를 보고만 있지 않았고, 명백하게 실패했다.


당신의 블록체인은 임계질량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혁명적인 기술인 블록체인은 정보의 민주화를 통해 기존의 권력 구조를 흔든다. 하지만 트레이드렌즈의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 블록체인 도입 성공에는 기술적 완벽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존 플레이어들의 저항과 시장의 힘을 고려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프랑스 혁명이 구시대의 권력을 전복하기 위해 시민들의 거대한 결집이 필요했 듯, 블록체인도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임계질량에 도달할 힘을 모아야 한다. 따라서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한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혁명에 동참할 충분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


*하이퍼레저 패브릭; IBM이 개발한 기업용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 개발 플랫폼으로 허가형 네트워크를 위한 모듈식 아키텍쳐이다.

**허가형 네트워크; 블록체인 내에 허가 받은 사람이나 조직만 들어갈 수 있다.

***신뢰 앵커(Trust Anchors); 디지털 보안 시스템에서 모든 신뢰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무조건 믿을 수 있는 대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에서 신뢰 앵커는 제네시스 블록이다.


참고자료 출처

https://www.maersk.com/news/articles/2022/11/29/maersk-and-ibm-to-discontinue-tradelens

http://kportea.or.kr/filedown/Treatise/2011/김원재_해운산업_수익성_제고_투자의사결정_모델구축에_관한_연구.pdf

Hübner, J. (2016). Shipping Markets and Their Economic Drivers.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680783704c36fd9eda93a2a318fb61d5e11252ef


작성자: ITS 27기 김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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