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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퍕 Mar 30. 2024

곰손이 만든 모자

어떻게든 만들어지는 모자

실습시간에 모자를 만들었다.

초보가 만들기엔 엄청난 작품 같지만,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찬찬히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만들어진다.

특별한 치트키가 없어도 직선박기 정도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잔잔한 꽃무늬로 안단을 대니 더 예쁘다.

겉보다는 속이 돋보이는 담담 화려한 컨셉이다.







집에 와서 배운 내용을 정리해서 다시 만들었다.





정말 그때는 무지했는데, 용감했다.

배운 걸 만들어보고 싶어서, 동대문에 재료들을 사러 갔다. 처음 가 본 그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곳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하고 레시피를 따라 하나씩 하나씩 만들었다.






이마가 닿는 밴드 부분은 탄력성이 좋은 다이마루 원단으로 덧대고, 장식은 비즈 꽃모양을 사서 달았다.

심심하던 무채색 모자가 화려하게 살아나긴 했으나, 비즈 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두꺼운 천에 강력접착제로 붙어있는 비즈는 바늘이 잘 안 들어갔다. 일일이 손바느질을 해야 했는데... 밴드를 몇 개는 감았던 거 같다. 그래도 완성해놓고 보니 보람 있었다.

신기한 건 왕초보 곰손이 만들어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작품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개를 만들어서, 시어머님과 친정 엄마께 각각 선물했었다.

시어머님은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자를 마음에 들어 하셨고, 자주 쓰셨다.

그러나, 바느질을 잘하시는 엄마는 나의 작품에 대해 지적질을 하셨다. 이건 이래야 되고, 저건 저래야 되고... 나의 정성을 몰라주는 데 부화가 나서 다시는 엄마꺼는 안 만들어 준다고 심통을 부리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뭔가 꾸준히 만들어 보냈다. 왜냐하면 나의 덕질은 계속되었으니까.. 점점 줄어드는 엄마의 잔소리에 비해 나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엄마를 떠나와 산 지 24년! 나는 엄마의 모자를 만들며, 어릴 적 엄마가 겨울마다 떠 주곤 했던 털 스웨터며, 조끼, 목도리, 벙어리 장갑들이 생각났다. 어린 딸의 옷을 뜨개질하던 젊은 엄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현실모녀는 투닥거리며 전화를 끊었지만, 엄마는 그 모자를 볼 때마다 나를 생각할 것이다. 어린 내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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