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금

by 흔한

1.


살다 보면 수많은 변곡을 맞이한다. 그런 순간은 인지한다기 보다 체감된다. 몸이 한쪽으로 쏠려 균형을 잃고 붕 떠있는 느낌. 순탄하던 일상이 전조 없이 휘고 구부러진다. 커브길의 곡률에 휘청이는 순간은 늘 의아하다. 분명 잘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당혹스런 마음에 고개를 빼고 뒤돌아 본다. 곧게 뻗은 길에서는 단번에 보이던 출발점이 굽은 도로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길은 여전히 이어져 있을 텐데도, 이상하게 과거가 통째로 잘려나간 기분이 든다.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런 순간이 유난히 당혹스럽다.


둘금에 나온 지도 어느덧 1년 4개월째. 이번 시즌을 연장하면서 정말 많이 고민했다.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멤버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몇몇은 연장 의사를 밝혔지만 대부분은 자신도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잠시 쉬어가겠다고도 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굽은 도로 위에 올라선 기분. 과거가 통째로 사라지는 느낌. 둘금이 어느새 변곡에 들어섰다는 체감이 들었다.


내가 알던 둘금도 결국 끝나는 걸까. 나도 조금 쉬어가야 하나. 쓸 만한 기억들은 이미 다 글로 풀어낸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다른 모임을 찾아볼까. 자주 놀러 가던 씀 에세이 두근? 지난번 놀러가기 했던 감응? 그런 가능성들을 하나씩 헤아리던 중, 멤버들이 차례로 참가 여부를 알려왔다. 거의 대부분이 연장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나 역시 망설임 없이 연장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그제야 알았다. 내가 이곳에 생각보다 깊이 정을 붙였다는 걸.


처음부터 둘금에 애정을 가진 건 아니었다. 첫 네 달 동안은 그저 글쓰기가 좋았다. 오래 품고 있던 생각을 뜨개질하듯 엮어 무언가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기억을 문장에 꿰매다 보면 어느새 그럴듯한 글이 되어 있었다. 삐뚤고 못났더라도 내가 무언가를 써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둘금이건 두근이건, 다른 어떤 에세이 모임이건 크게 상관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곳이 어디든 글만 쓸 수 있다면.


그다음 시즌이 되어서야 둘금 멤버들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자주 읽던 고전이 아니라서 좋았고, 전업 작가의 글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쓴 글.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빚어낸 문장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저절로 태어난 글. 그들의 글은 문장이 서툴러도 빛났고, 어설퍼서 아름다웠다. 그러다 가끔 삶의 진실 한 토막을 담은 글을 마주할 땐, 내 일처럼 기뻤다. 그들의 글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를 계속해서 발견해나가는 일을 애정이라 말할 수 있다면, 처음으로 둘금을 애정하게 된 시즌이었다.


그다음 시즌에는 둘금 멤버들의 글을 닮고 싶어졌다. 내 글은 언제나 치장에 몰두해 있는 반면, 둘금 멤버들의 에세이는 과장되지 않았다. 그 담백함이 부러웠고, 때론 조금 질투나기도 했다. 멤버들은 자신의 글을 대할 때 늘 담담했다. 자신의 글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우기지 않았고,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살아낸 것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을 건네는 듯했다. 삶의 한 토막만 담은 글이 이토록 찬란하다니.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넓고 깊은 것인지. 멤버들의 겸손은 글솜씨에 대한 겸양이 아니라, 드높은 삶에 대한 찬가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글 덕에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하면 조금은 과장일까.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글은 그들에게 빚을 졌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도 글을 썼다. 둘금에서 배운 대로, 살아지는 대로 썼다. 어떤 날은 신이 나서 썼고, 어떤 날은 눈물 흘리며 썼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 앞에서 늘 가슴이 떨렸다.


지난 시즌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좋아졌다. 일 년쯤 보아오니 이제야 사람이 보였다. 눈썹의 움직임만으로도 기분이 읽혔고, 말의 첫머리만 들어도 그들의 지난 글이 주루룩 떠올라 뒤이어 나올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읽고 이해해주었다. 뜨개질하듯 짜낸 글들이 나도 모르는 새 우리를 엮어주고 있었다. 매달 서로의 독자가 되어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걸 이제 깨닫다니. 난 항상 늦는다고 생각했고, 늦게나마 그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관계를 이어가준 이들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둘째 주 금요일의 퇴근길은 언제나 행복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반차를 쓰고 일찌감치 강남으로 향하던 날이 많았다. 오전 11시 30분의 이른 퇴근길에는 쨍한 햇빛이 기분 좋게 내리쬐고 있었다. 한낮의 햇살은 노랑으로 눈부셨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쪽으로 태양이 붉게 고였다. 강남에 도착하면 카페에 들어가 그달의 책을 읽거나 둘금에 댓글을 달았다. 오후 7시가 되면 아지트로 향했다. 모임 시간이 다가올수록 작은 방에는 고소한 커피 냄새와 소곤대는 대화가 켜켜이 쌓였다. 마음 깊은 곳이 은근한 온기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커피 향과 멤버들의 목소리가 몸에 밸 때까지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2.


새 시즌을 앞두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애정하던 멤버들은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이번 모임이 끝난 뒤에는 몇 명이나 더 남아 있을지. 만남과 이별이 어떤 표정으로 찾아올지 모른 채, 모호한 기대와 막연한 걱정을 절반씩 품고 있다.


한 차례 변곡을 지나오고 나니 이제는 안다. 무언가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사랑도, 우정도, 글쓰기 모임도. 언젠간 끝날 것이고 보낸 시간이 소중했으면 충분하다는 말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욕심부리고 싶다.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 싶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실직을 하거나 또 다른 진창에 빠지더라도, 결혼을 하거나 예순 살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이곳만은 오래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시간을 훌쩍 건너 30년 뒤의 미래에 도착하는 상상을 한다. 예순이 넘은 나는 백발이 성성한 머리로 가방을 멘 채, 금요일 저녁이면 강남으로 향한다.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손에는 책을 쥐었다. 모임에 참석해서 이렇게 말하는 꿈을 꾼다. 아주 가끔, 세상엔 영원한 것도 있더라고. 수십 년간 서로를 용인하고 긍정하는 우정이 가능하다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으로도 꾸준히 그것을 증명해 나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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