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의 커리어를 돌아보니 나는 스페셜리스트로 일한 시간이 더 길었다. 나의 업무에만 집중하면 되었기에 전문성도 잘 쌓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지만 팀이나 조직으로 얽힌 관계가 아니었기에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도 크게 있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건 혼자서 하는 일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깊이는 들어갈 수는 있어도 크게 뻗어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여러 번 느끼면서 30 후반 즈음에 조직에 합류했다.
프로젝트 성으로 단기간 함께 일하는 것과 장기간 팀에 소속되어 조직의 일원으로 근무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시의 체감은 이미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중학교를 다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동료들이 소통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이 내게는 다른 세계의 것인 양 너무 생소했다. 수년이 지나 이제는 많이 나아졌지만 프리랜서 혹은 개인사업자에서 팀 멤버가 되는 시간 나의 성장통은 꽤 오래 고통스럽게 지나갔다.
다양한 업무 형태를 경험한 것은 운영 총괄로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최적의 팀을 구성하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뛰어난 인재일수록 대기업에 몰린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인재는 규모가 작은 사업체일수록 더 필요하다. 한 명 1인분 이상을 해 내야 하기도 하고 수시로 바뀌는 환경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려면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서 이 현실적 거리를 어떻게든 줄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오픈 멤버를 영입 준비에 들어갔다.
첫 채용은 오피스도 완성되기 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말 쉽지 않았다. 우리는 모 기업에 속해 브랜드 인지도가 아예 없진 않았지만 하는 일과 근무조건이 전혀 달랐으며 리브랜딩을 한 상태라 시장에 알려진 정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직원을 채용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조직을 잘 알릴 수 있을까? 어떤 베네핏을 어필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 끝에 리브랜딩의 배경과 우리의 포부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아주 솔직하게 설명했다. 외국인 지원자들은 솔직함을 반가워했고 일부 한국인 지원자들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채용 과정에서 느낀 건 급여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외국 분들은 그 회사의 방향성과 자신의 업무 스타일 매칭에 더 관심을 보이는 반면 한국 분들은 안정적인 근무환경과 복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일하고 싶은 방식 vs. 조직 시스템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오픈 멤버들을 어렵게 모집하고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업과 매출은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만 그 사이 두 명의 한인 직원에 변동이 있었다. 한 명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되는 숫자 실수로 나가게 되었고 다른 한 명은 본인이 생각한 이상향과 업무 사이의 괴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떠났다.
같은 동료이기만 했으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끝났겠지만 내가 채용한 사람들이 나갈 때의 마음은 납득이 되거나 그 결정이 조직을 위해서 맞는다고 해도 어렵다. 오픈 멤버이기에 내 감정적 동요도 신경 써야 했지만 남은 직원들의 동향도 살피게 되었다. 작은 조직에서 두 명은 꽤 크게 다가오니까.
우리는 막 걸음마를 시작한 조직에서 1년도 안 되어 다시 채용을 해야 할 생각을 하다 보니 이력서가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시간은 길지 않지만 사업 초기와 지금의 상황에서 같은 업무라 하더라도 환경이나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채용공고를 내기 전에 우리의 현 상황을 먼저 들여다봤다. 조직개발과 관리 분야의 대가인 Larry Greiner에 의하면 대부분의 조직은 5단계의 성장 과정을 거친다. (하기 이미지 참조 *이미지 출처: 가인지 캠퍼스) 우리는 어렵지만 운 좋게 첫 시작을 모두 유경험자이자 어느 정도 전문성을 확보한 멤버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해야 할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다양한 업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전문성은 뛰어나지만 자기 업무나 에고가 너무 큰 직원은 현재 단계에서는 융합이 어려웠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해당 업무에 대한 유경험자이면서 다양한 업무에 대한 소화가 가능한 범용적인 인재였다. 지금은 탁월한 전문성 보다 어떤 일이든 살아남기 위해 같이 해보자는 자세가 훨씬 중요했다. 이 같은 판단이 서자 이력서를 보는 눈도, 인터뷰 질문지도, 채용의 기준도 달라졌다. 기존 안정적인 조직에서 채용, 교육, 관리를 할 때와는 다른 선택들. 경험이 있어도 나 또한 지금 근무환경에서는 새로운 생각과 지식으로 일을 해야 할 때가 계속 생긴다.
그럴 때마다 아직도 배울 게 많구나. 다시 말해 계속 성장하고 있구나. 싶다가도 순간순간 나보다 더 노련한 운영자가 이 자리에 있다면 직원 관리나 채용을 더 잘 하지 않았을까라는 죄책감이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마음을 다 잡는다. 2단계 채용을 마치고 이제 필요한 건 매뉴얼 작업과 관리 일 것 같다. 최고의 효율과 안정을 위해 아주 사소한 것까지 보고 또 보며 작업을 해 나가야겠다. 여전히 인사가 만사라는 생각이 있지만 시스템을 잘 갖춰 놓는다면 적어도 채용 풀은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