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등학교, 나의 호그와트
고등학생이 되었다. 과학고는 신기했다.
그 시절 내가 다녔던 과학고엔 크게 네 개 건물이 있었는데 교문을 들어서면 우선 정면에 가장 큰 건물인 교사동이 있었다. 일반적인 학교와 같은 건물이라고 보면 되고, 1층 입구에 들어서면 학교 연혁부터 역대 주요 경시대회 입상자들 사진이 걸려있었다. 교문을 등지고 교사동을 마주 보고 섰을 때 우측에 기숙사와 식당이 있었고 그 반대편, 그러니까 교문을 들어서 왼편에 독서동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전교생이 이 독서동에서 자습을 한다. 자습실 같은 공간이자 교사동만큼이나 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독서동 자리를 배정받았다. 독서동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1학년은 3층을 썼다. 2학년이 1층, 3학년이 2층을 썼던 것 같다. 독서실에 가면 있는 칸막이 붙은 책상이 층마다 100개쯤 있고 거기에 반별로 자리를 배정받았다. 1반은 제일 오른쪽, 2, 3반은 중간, 4반은 가장 왼쪽 이렇게.
내게도 자리가 주어졌다. 내 책상의 책꽂이를 채웠다. 적응 교육 기간에 부랴부랴 샀던, 아직 빳빳하고 새 책 냄새가 나는 하이탑, 실력 정석을 꽂아 넣었다.
책 정리를 한다고 독서동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친구들의 자리를 보게 되었다. 나중에 독서동에서 공부할 때도 당연히 그랬다. 서로 좋은 책을 추천하기도 했었고. 그때 정말 신기했던 것은 대학 교재를 꽂아놓은 애들도 있고 이미 하이탑을 몇 번 보고 들어온 친구들도 많았다는 점이었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게 일단 신기했고 내가 이런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이 뿌듯하고 놀라웠다.
그냥 책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친구들은 이미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들이 똑똑하니까 내가 뭘 물어보면 설명도 정말 잘해주었다. 한 번은 화학에서 결정구조였나 그걸 내가 이해 못 하고 있었는데(나는 공간지각능력이 없는 사람이다ㅠ) 그걸 보던 한 친구가 운동장에 나가서 테니스공을 쌓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똑똑하고 착한 아이들이 많았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너 왜 학교 안 다녔어?"가 물론 걸림돌이긴 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내 관계 맺기의 시작엔 대체로 그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 관문을 넘으면 다들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주었다. 물론, 가끔 그런 건 있었다. 지금이야 나이가 들어서 중학교 이야기를 할 일이 없지만, 그땐 우리가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중학교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이를테면 무심결에 나오는 "너는 중학교 때 심화반* 했어?"와 같은 경우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 친구들이 나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벌어질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순간 당황했어도 내심 기뻤다.
나는 그렇게 적응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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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반*: 수학, 과학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학교별로 두세 명 정도 선발해 교육청에서 영재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 그렇게 들었는데 사실 나는 심화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ㅋㅋㅋ 학교가 다른데 친했던 친구들은 보통 교육청 심화반 동기인 경우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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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이미지: https://www.geologyin.com/2014/11/crystal-structure-and-crystal-system.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