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9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우리가 서로를 소개하거나 인사를 시키거나 하는 순간이 오면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은 누구누구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좀 더 정중하게 소개할 때는 이분으로 말씀드리면 이런 저런 일을 하는 분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여 서로 삿대질을 하며 얼굴을 붉힐 때조차 이 인간이라는 말은 좀체 쓰지 않고 이 사람이 또는 이 양반이 하면서 말을 순화시키면서 서로 간의 파국을 조정하는 지혜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이자 사람인데 왜 굳이 이 양반이니 이분 저분 하는 말을 들어야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 인간 저 사람보다는 이 양반 저분이 존대어라고 느끼는 까닭도 궁금해진다.
이 분이라는 말에 어떤 비밀이 있길래 인간과 사람을 대신하여 세상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지만 그 연원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에 집중하고 살고 있으며 무엇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리고 있는 지를 알아야 대답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세상을 살고 있으니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지 아니면 민주주의 세상을 살고 있으니 국민, 즉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자본, 즉 돈과 국민을 떠받치고 구동하는 세상이라는 시스템은 무엇으로 작동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누구도 선뜻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한다고 세상의 섭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입만 열면 너무 자주 말을 해서 그 말이 어떤 의미 인지도 모르고 쓰고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닌 지 한번쯤 의심해 보자.
현대는 과학(科學) 만능 시대라고 한다. 어디에도 과학이 안 붙는 곳이 없고 과학을 뒤에 갖다 붙이면 합리적이며 세련된 문명인이라는 기분이 드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과학(科學)에 과(科)를 글자 그대로 파자(破字)
하면 벼 화(禾)를 말 두(斗)로 나눈다는 의미이다. 인류문명의 특이점이 농업혁명이고 농업의 대표적 작물이 쌀이라는 것은 누구나 수긍이 간다. 그런데 쌀, 즉 벼를 말로 나누는 것을 배운다라는 의미는 우리가 먹거리를 나누고 배분한다는 것이 문명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섭리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과학을 파자하여 얻은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섭리는 동사에 들어있다는 진리에 비추어보면 과학이라는 글자에서 우리는 나누는 것을 배운다라는 두 개의 동사를 만난다.
나누는 것을 배우는 분배의 정의는 지구에 온 생명체에게는 그 뿌리가 워낙 깊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우리는 신의 분배에 기대어 신본주의 세상을 먼저 만들었다.
전지전능한 신께서는 반드시 인간의 모든 처지와 형편을 헤아리시고 어디에도 임재하셔서 공평하게 분배하실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하여 농업혁명 이후 화폐경제가 싹틀 무렵의 시기에 오늘날의 기성종교의 신이 대거 세상에 나타난 것도 의미심장하며 우연이 아닌 필연의 냄새가 나고 이때 출현한 신의 역할은
분배하시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닌지? 합리적 추론을 한번 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신과 인간과의 계약을 통한 믿음의 여정 속에서 신과 인간 간에 일어났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역사가 르네상스 이전의 세상이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신의 분배에 염증을 일으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르네상스 이후 탄생한 인본주의는 과학이라고 하는 절대병기로 무장하고 신본주의를 해체하여 인간의 분배에 기반한 인본주의를 마침내 완성한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 현대 세상인 것이다.
그렇게 나눔의 미학을 신에게서 인간으로 이전하면서 우리는 과학에 기반하여 인간 세상을 완성하면서 신을 부르는 대신 인간을 이분(分)저분(分) 여러분(分)이라 부르며 나눌 분(分)자를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부르면서 인간에 의한 분배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몫을 가진 인간으로서 이 분 저분 그리고 여러 분으로 불리는 우리 문명을 돌리는 섭리가 분배이며 나눔이므로 나눔의 몫을 받는 한 분 한 분의 소중함은 우리가 세상에 와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관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나눔의 힘은 나누고 배우는 과학의 힘이며 이 과학의 힘으로 우리는 이 분(分) 저분(分)여러 분(分)으로 불리며 미래에도 여전히 한 몫하는 한 분(分)으로 존재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