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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Aug 15. 2024

시간은 돈이다  (TIME IS MONEY)



2024.08.16

지금 여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행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유한한 시간을 살다가 간다는 것이다.

이 유한한 시간 동안 치열하게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가 확장되어 국가가 세워지고 지리와 관습과 공동의 가치관에 따라 국가는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시간이라는 강줄기를 따라  치열하게 흘러가면서 역사라고 하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대화까지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행동을 만들어 내고 세상 속의 수많은 인간들의 행동이 모이면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역사가 개인의 미시사이던 국가 간의 거시사가 되었던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개인과 국가의 행동에는 그에 걸맞은 합목적적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문명의 태동은 잉여생산물을 화폐로 바꾸어 놓으면서 가속화되었고 문명 이후 인류의 모든 행동 뒤에는 늘 화폐를 향한 근원적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고 보아야 인류의 역사가 설명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우리 문명은 자본주의의 모습으
로 태동되었고 발전했으며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오래된 습관은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곧 돈을 버는 첩경이라는 고정관념을 인류에게 각인시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문명의 진보라 여기게 만들었고 어느새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환경을 극강의 가성비로 도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화혁명 AI혁명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혁명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유한한 생명으로서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조급함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화폐라고 하는 욕망을 건드려 시간을 소유하는 대신에  화폐를 소유함으로써 불로불사의 존재가 되겠다는 생명체가 가지는 합목적성의 구현이 어쩌면 우리 인류가 만든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나간 상상일까?

마케도니아를 떠나 인도 갠지스강까지 서에서 동으로 달려간 알랙산더의 군대도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스텝 고속도로를 따라 동에서 서로 달려간 칭기즈칸의 몽골기마병도 오스만제국에 가로막힌 육로 무역로를 대체하면서 대서양 항로를 개척하여 신대륙을 발견하고 문명의 헤게모니를 대륙에서 대양으로 뒤바꾼 콜럼버스의 선단도 결국은 시간이라고 하는 인간이 잡을 수 없는 추상을 돈이라고 하는 인간이 추구 가능하며 획득 가능한 재화로 바꾼 물꼬를 튼 행동의 결과인 것이다.

화폐를 향한 대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첫 번째 시험장이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아메리카에서 은을 포함하여 막대한 재화를 손에 넣은 해양세력이 100년간 힘을 길러 일본이라는 주구를 앞세워 대륙세력에게 가도정명이라는 선전포고를 하고 한반도를 거쳐 중국 대륙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어 그 옛날 알랙산더 군대가 서에서 동으로 달려가 갠지스강 앞에서 멈췄던  인도를  이제는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서 힘을 키워 태평양을 지나와 일본에서 숨을 고르고 동에서 서로 한반도 중국 인도까지 기어이 정복하겠다는 국제관계의 그레이트 게임의 출발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1592년 임진왜란, 즉 동아시아 대전이다.

7년간의 참혹한 전쟁 끝에 일본이라는 주구를 통해서 대륙은커녕 한반도도 어찌해 볼 수없다는 물자와 인구의 역부족을 깨달은 해양세력은 산업혁명을 통한 기계산업을 앞세워 과학문명을 발전시켜  오스만 제국을 넘어 인도를 손에 넣고 동남아와 일본을 통해 청과 조선을 포위하여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대륙까지 경락하면서 대륙세력의 헤게모니를 대양세력으로 가져오는 4백 년간의 그레이트 게임을 기어이 완성했다.

어쩌면 1,2차 세계대전은 4백 년에 걸친 그레이트 게임의 승자, 대양세력끼리 대륙이라는 전리품의 분배를 놓고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던 분배의 전쟁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1943년 12월 카이로와 1945년 얄타에서 전후 세계 질서를 논의하는 루스벨트와 처칠 그리고 장개석과 스탈린의 계산법에서 여타의 세계 다른 나라의 식민지와 달리 한반도의 독립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4백 년이 넘는 그레이트 게임에서 한반도가 얼마나 중요한 린치핀(Linchpin)인지 그들은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카이로와 얄타회담으로 마무리되지 못한 한반도라는 린치핀을 두고 사활을 걸고 싸운 전쟁이 우리가 참혹하게 겪어낸 한국전쟁이다. 결국 대륙세력과 대양세력이라는 마차를 굴리기 위해 필요한 바퀴는 한반도라고 하는 린치핀이 없으면 굴러갈 수없음이 지난  5백 년간의 그레이트 게임의 결과다. 그리고 냉전과 신냉전의 반복은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단순히 역사를 아는 것과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역사에는 미움과 시기 그리고 증오가 동반되지만 역사는 그것이 개인 간의 미시사던 국가 간의 거시사던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광복을 둘러싼 헤묵은 역사논쟁은 린치핀을 녹슬게 하는 자해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자각하고 어떻게 하면 신냉전의 질서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린치핀을 갈고닦아 문명의 바퀴를 힘차게 돌릴 수 있을지 우리는 시험대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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