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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Aug 18. 2024

일류 이류 삼류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거지


2024.08.19

우주의 어느 별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불시착하여 과거의 기억은 모조리 소거되고 오로지 세상이라는 생존경쟁의 장에서 부분을 담당하는 한 분이 되고 이 분 저 분으로 불리다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옷을 벗고 짐을 내려놓고 여러 분에서 한 분이 되어 홀가분한 자기를 돌아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자기의 참모습 진아인 것이다.

세상은 어떤 면에서 보면 무자비하다. 무자비한 세상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을 지나가는 여행객이나 이민자쯤으로 여긴다. 출생증명서라고 하는 여권을 소지하고 세상이라는 공간에 들어선다는 의미는 이민가방을 들고 입국심사를 거쳐 입국장에 들어서는 이민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선 곳에 들어서는 이민자의 직업이 처음 마중 나온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좌우되듯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도 처음 만나는 부모가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 무자비한 세상은 영문도 묻지 않은 채 우리를 극악한 가정에 내동댕이 칠 수도 있고  기름이 반질반질하고 풍요롭고 사랑이   가득한 포근한 환경에 우리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만족과 결핍을 맛보면서 세상이라는 공간을 유영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새로운 나라에 이민온 이민자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듯이 세상이라는 무자비한 공간도 이미 다녀간 무수한 여행객들이 닦아 놓은 수많은 트랙과 레인 그리고 갖가지 종목들로 대표되는 그라운드가 널려져 있다. 일견 보기에는 다양한 음식과 메뉴로 채워진 맛집 혹은 뷔페식당 같이 보이나
그곳은 엄연히 대중음식점부터 최고급 레스토랑까지 천차만별의 식당과 그에 따른 음식값이 책정되어 있는 차별화된 세상인 것이다.

세상이라는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물결을 따라가는 가에 따라 일류가 있고 이류가 있으며 당연히 삼류도 있다. 세상을 사는 우리가 어떤 흐름에 올라 탈지는 선택과 노력 그리고  운이라고 하는 세 가지 변수가 작용한다.

선택과 노력 그리고 운이라는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일렬로 늘어서는 카지노의 잭팟을 터뜨리면 세상에 온 우리는 일류에 올라타서 자유로운 영법으로 세상을 유영하면서 왜 세상이 무자비하다고 하지?라고 의문하면서 하루하루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불평하면서 일류인생에 무감각해져 가는 것이다.

이처럼 서열화되고 불평등하며 무자비하기까지 한 세상에 와서 삼류의 물결에 올라탄 대부분의 여행객에게 있어 인생역전은 이류로 갈아타고 일류가 되는 것이 오로지 이 세상에 온 목표가 되어 하루하루를 분투노력하고 일로매진 하는 것이다.

세상이라고 하는 무자비한 곳에 떨어져 누가 시킨 바 없는 강제노동을 오직 자신의 트라우마와 가치관에 따라 평생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시시포스의 노동 같기도 하고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에게 대적하여 신으로부터 죽음을 훔친 시지프의 신화는 시시포스가 매일 같이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려야 하는데, 산꼭대기에 닿는 순간 바위가 밑으로 굴러 내리는 형벌이다. 시시포스를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부조리한 영웅으로 간주한 까뮈는 그를 죽음을 증오하고 의미 없는 일을 하도록 선고받고 끊임없는 노동에 내몰린 현대 노동자의 삶과 닮아있음을 간파하였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죄목으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아 코카서스 절벽에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고 영웅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쇠사슬을 끊고 탈출하여 제우스와 담판하여 신과 인간의 관계를 별개의 존재로 확립한 먼저 아는 자라는 이름의 프로메테우스는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존재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늘날 일류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프로는 프로메테우스에서 따온 것이다.

세상이라는 무자비한 공간에 떨어진 인간에게 죽음이라고 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부정하거나 잊고 산다는 것은 시시포스의 노동과 같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시달리면서 그것을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부조리한 영웅이라 여기는 착각은 아닐까?

일류인생이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면서 생과 사에서 거듭나는 존재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고 기어이 불이라는 문명을 우리 인간에게 전해준 , 먼저 아는 자 프로메테우스의 불굴의 정신이 불씨가 되어 수많은 인간 프로들이 일류의 물결을 타고 유영하고 명멸한 흔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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