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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Nov 15. 2024

[윤 해 록] 유세차(維歲次) 문명, AI 상향(尙饗)


문명은 비록 말과 글로 밝히지만 필연적으로 사진이나 그림과 같은 이미지화를 거쳐 우리들 뇌리에 추억으로 저장된다.


따라서 말과 글은 추억으로 가기 위한 한낱 도구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뭐라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한번 더 생각해서 현대를 규정해 본다면 스마트 폰의 대중화로 인하여 흘러넘치는 사진과 동영상을 포함하는 영상물映像物의 홍수시대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문명시대에 살고 있지 않고 문명이 낳은 그림자, 영상물映像物의 시대로 이미 깊숙이 발을 담그고 손을 놀리며 눈과 귀를 혹사하고 일상에서 체면體面을 화면畫面과 맞추면서 개개인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영상물映像物과 함께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이 현실로 되는 과정 중에 인간이 시간을 거슬러 공간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그림자 영상映像이 이 모든 과정과 단계를 생략한 체 현대인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하는 영상물映像物의 홍수는 우리에게 상상할 시간과 이유 그리고 자유마저 앗아갔다.


우리 인류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을 대략 넓게 본다면 상상을 억압하고 여백을 지워가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한 세대 전만 돌아봐도 라디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일을 하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우의 대사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며 상상의 나래를 피우던 애청자가 티브이 수상기의 보급으로 보고 듣는 시청자로 바뀌면서 상상의 여백이 줄어들었고, 일방향 티브이 수상기는 쌍방향 인터넷을 탑재한 퍼스널 컴퓨터로 진화했고 책상 위라고 하는 공간의 제약을 넘어 내 손안에 들어온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되면서 우리들의 상상의 영역과 여백은 축소되고 실종되어 현실은 현실의 그림자, 영상映像이 이끌어가는 가상세계로 깊숙이 끌려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홍수처럼 밀려드는 현실의 그림자, 영상물映像物의 범람은 우리에게 상상의 여백을 지우고 생각의 힘을 약화시켜 지혜자로서의 호모사피엔스인 우리 인류의 사고를 인공지능에게 아웃소싱시키는 AI시대 초입에 우리는 서 있다.


이제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제사祭祀, 차사茶祀, 묘사墓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축문祝文, '어언 세월이 흘러 제사가 돌아왔습니다'라는 의미의 유세차(維歲次)는 뜻풀이를 해 보면, 유(維)는 그냥 예령에 지나지 않는 발어사(發語詞)이고 세차(歲次)는 해, 세월을 뜻하는 세(歲)와 버금, 차례를 뜻하는 차(次)로 이루어졌다.


아무리 제사祭祀보다 제물祭物에 마음이 가도 '적지만 흠향歆饗하옵소서'라고 하는 축문祝文의 끝 상향尙饗이라는 말이 나와야 음복飮福을 한다.


유세차維歲次로 문명을 시작한 우리 인류가 AI로 상향尙饗후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를 음복飮福하지 않고 영상映像이 만든 세상의 지식 만을 음복飮腹한 결과 배는 나오고 머리는 비어가니 AI가 요리하는 지식은 쌓이고 넘치지만 호모사피엔스의 지혜는 흠향歆饗하지 못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가 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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