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환국換局, 소중화와 스몰 아메리카
바뀔 환(換), 판 국(局), 즉 '상황이 크게 바뀐다’는 뜻의 환국은 현종 때 예송 논쟁을 치르면서 남인과 서인 두 붕당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숙종 때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서로 중전 자리를 번갈아 차지하면서 점차 서로 권력 투쟁에만 매달리게 되면서 붕당 정치는 변질되기 시작했으며 자기 당을 위해서만 일하고, 좀 더 오래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상대 당이 존재하는 것까지 부정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역사는 늘 이렇게 반복된다. 가까이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태블릿 PC라는 최서원의 소유인지도 불명확한 허위 물증을 증폭시켜 촛불시위에 불을 질러 국민의 손으로 뽑은 현직 대통령을 마녀사냥 하듯이 잡아 정권이 교체되는 환국을 기어이 이루어 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르기도 전에 또다시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말이 국회의 도마 위에 올려지고 있다. 이 국회의 도마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자신의 당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임명직 공직자들을 상대로 무차별적 탄핵을 남발하고 있었다는 것도 분명한 팩트이다.
늘 다툼의 쟁점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다.
이처럼 맥락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모두가 서로 너 때문이야를 남발하고 싸우다 힘이 부치면 세를 규합하고 여론을 몰아가 상대방을 업어치기 하면서 온갖 유언비어와 날조된 마타도어를 가지고 자신의 사익을 위하여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미래자산을 낭비하는 것도 모자라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듯이 공동체를 잿더미로 만드는 일이 허다하다.
환국은 가치중립적 현상이다. 환국으로 얻는 이익이 환국을 하지 못함으로써 얻는 손실보다도 크다면 환국은 공동체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다.
2024년 12월 3일 자정이 가까운 무렵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가 새벽 무렵 해제된 비상계엄에 대해 모두가 할 말이 많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상황이 크게 바뀐다’는 환국換局의 전형적인 예에 불과하다.
복잡계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거시와 미시의 박자와 리듬을 잘 타야지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다. 공동체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을 앞에 두고 우리는 오로지 거시적 안목에서만 판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비상계엄이라는 대통령의 결정이 내우외환의 국제정세를 앞두고 국익을 위한 고육책苦肉策인지 비상계엄 해제라고 하는 야당의 표결이 권력 투쟁에만 매달리는 붕당 정치의 변질인지를 가려내야 하며 국회의 표결결과를 수용하여 비상계엄 해제를 결정한 대통령의 민주주의 절차의 존중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런 거시적 관점 사이에 수많이 숨어 있는 미시적 관점에 기초한 복선과 반전 유언비어와 마타도어 그리고 주류언론이라고 자처하는 탄핵 조력자들의 곡필도 함께 하면서 환국 정국은 흘러갈 것이다.
병자호란으로 비록 청에 굴복하였지만 무너진 명나라를 대신하여 소중화로 자칭하고 청나라를 오랑캐 취급하면서 정신승리로 달려가 소중화라는 상징처럼 예송논쟁에 몰두하다가 붕당정치로 이어지고 붕당정치를 타파하려는 탕평책을 실시한 영, 정조 때 숨죽이던 붕당정치의 망령이 순조가 즉위하자마자 세도정치로 바뀌면서 국가의 이익이 안동김가 풍양조가 여흥민가라는 가문의 이익으로 철저하게 치환되면서 허울뿐인 소중화 조선은 망국을 자초하며 처절히 무너졌다.
이제 망국과 독립, 건국과 번영을 구가하면서 대한민국은 패권국 미국 못지않는 민주적 제도와 절차 그리고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는 세계가 인정하는 스몰 아메리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미국을 벤치마킹하면서 달려왔다. 중화질서 속의 소중화 조선 그리고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의 스몰 아메리카 대한민국,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해결책은 역사의 평행이론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다.
그 역사적 평행이론 속에 숨겨진 비상계엄이라는 환국의 의미를 가치중립적으로 온 국민이 받아들인다면 선사후공으로 나라의 부를 착취하며 공동체를 밑동부터 썩게 했던 세도정치의 주역이 지금 오늘날에는 누구로 환생한 것 인지 삼척동자도 알 일이 아닌가?
다만 사심과 욕심이 눈을 가리면 고육책을 보고도 알지 못하고 듣고도 흘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