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 백사白沙 , 장사長沙 명사십리明沙十里
흰모래, 긴 모래 그리고 밝은 모래 십리길 원산 앞바다의 은빛 모래사장까지 모래를 모태로 하는 지명이 다양하구나.
한강 백사장에서 멱을 감던 뚝섬 유원지는 이제 기억하는 사람조차 가물가물하다. 한강에 그 많던 모래는 5공 정권의 치적 중 하나인 한강 종합개발로 지금 한강변의 병풍 같이 드리워진 고층 아파트로 환골탈태되었고 그 모래도 모자라 바닷모래까지 끌어와서 분당 일산의 1기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러고 보니 한강의 기적은 모래의 기적 같게도 느껴질 정도로 한강변에 서 있는 고층 아파트를 포함하는 수많은 빌딩들은 마치 모래성 같이 도열하면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고통과 고난은 도무지 기억하기 어렵게 밤낮으로 불야성 같은 모습으로 우리 모두를 경탄하게 한다.
시멘트 자갈 모래에 물을 섞어 만든 콘크리트 건물은 로마시대 이래 물질문명을 견인했고 모래와 자갈이라는 천연재료에 시멘트라고 인공의 바인더를 결합하여 문명의 불야성을 쌓아 올렸지만 50년 굳고 50년 약해지는 콘크리트의 물성상 백 년을 넘기기 힘든 것을 보면 백 년도 못 사는 인간과 퍽이나 닮아 보이며 동병상련의 동반자로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래는 지구를 순환하는 물이 토양과 암석을 깎고 갈아 만든 자연의 걸작품이다. 상선약수와 같이 물은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그 물이 그물이 아닌 것과 같이 한 번 흘러간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치 우리 인간이 한번 흘려보낸 세월을 다시는 붙잡지 못하듯이 물은 모래라는 흔적만을 남긴 체 지금도 쉼 없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흐르는 물이 모래를 만드는 속도와 비교할 수 없이 모래를 퍼다 쓰는 세상의 문명 앞에 냇가의 모래는 물론 강가의 모래마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블록제방이 자리 잡았고 광활한 백사장에 빼곡하던 인파로 메워졌던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래사장도 해류에 쓸려가서 이제는 해마다 피서철 이전에 거대한 바지선에 모래를 실어 날라야 해수욕장이 유지되는 모래품귀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자연의 모래 대신 인공의 모래성으로 올린 아파트에서 살면서 날마다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하며 살고 있지만 백 년이 못 가서 인간도 인간이 쌓아 올린 모래성도 모래시계 먀냥 흘러내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사는 것이 상선약수가 만든 모래를 끌고 와서 사는 우리의 숙명은 아닐까?
물도 흘러가고 모래도 쓸려가고 인생도 사라져 간다. 모두가 모래시계 마냥 흘러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없는 속도로 추락하고 만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래시계의 잘록한 허리 언저리에서 이전투구하고 분투노력하는 삶을 살 것인지 시원하게 떨어져서 모래시계를 뒤집는 순간이 오면 미리 떨어진 나가 가장 안전한 상층부의 모래가 된다는 지혜로서 사는 삶을 살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