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백년전쟁에서 핵은 무엇일까? 을사오적과 혼군 고종으로 인해 망국의 이등 신민이 된 우리 백성들은 일제를 향해 독립전쟁이라는 선전포고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독립운동이라는 불가피한 평화 시위를 계속하였지만 1932년 당랑거철의 결기로 무장한 1908년 6월생 매헌의 도시락 폭탄을 일제 침략자에게 투척함으로써 드디어 우리는 일제에게 독립전쟁의 선전포고를 당당하게 무력으로 행사하였다. 덧붙혀 1932년 국제연맹에서 우남의 필마단기의 외교투쟁으로 일제는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기존의 해양세력과 거리를 두며 고립을 자초하게 되었다.
이처럼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매헌의 무장독립전쟁도 필마단기匹馬單騎의 우남의 외교독립전쟁도 독립운동이라는 모호한 한국민들의 저항에 종지부를 찍고 독립전쟁의 선전포고를 뒤늦게 했다는 나름의 자긍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매헌과 우남의 독립전쟁은 거악의 일제라는 제방에 바늘만 한 구멍을 낼 뿐이지 그것이 일제를 패망으로 이끌어 가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양세력의 주구走狗로써 대륙을 침략한 일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지불식간에 해양과 대륙을 아우르는 강자가 되어 있었다. 일장기가 욱일기가 되어가며 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한반도를 디딤돌 삼아 만주를 경영하고 중국을 침략하여 인도차이나를 지나 인도에까지 다다르고자 했던 수백 년의 숙원을 드디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직전 그야말로 욱일승천하면서 완성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진주만 공격전의 일제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그때에 자강 하던 수많은 한반도의 선각자들이 초심을 잃고 일제의 회유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들의 눈앞에서 욱일승천하던 일제의 힘에 굴복했다. 일제는 더 이상 당랑거철하고 필마단기했던 매헌과 우남의 선전포고만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골리앗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일제가 모스크바를 향해 질풍노도처럼 진격했던 히틀러를 믿지 않았다면, 히틀러가 욱일승천하며 인도를 향해 진군했던 히로히토昭和를 믿지 않았다면 독일은 미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일본은 진주만을 폭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으나 아마존의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뉴욕증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결과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동상이몽의 꿈으로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이 된 독일이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항복한 이후에도 여몽麗蒙연합군의 일본열도 상륙을 물리친 신풍神風, 가미카제에 빙의憑依하여 1억 옥쇄玉碎설을 소리 높여 외치며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족쇄로 한국민들까지 도매급으로 끌어들인 일본 군국주의 세력들은 미증유의 핵폭탄을 두방이나 맞고서야 비로소 신풍의 미몽에서 깨어나서 일본열도뿐만 아니라 한반도까지 요새화하고 옥쇄화 하려했던 무모한 계획을 철회하고 연합군 측에 무조건 항복했다.
만약 핵이 없었더라면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한반도에 살고 있던 일제의 이등신민들은 1908년 1월생이 6.25 전쟁 중에 토굴에 숨어 은거하였듯이 일제가 파놓은 토굴에서 총을 들고 미군과 교전하다가 유황도의 일본군과 같이 미군이 쏜 화염방사기로 소신燒燼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반도는 일본열도와 같이 하나하나 파괴되면서 연합군에게 처절하게 점령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지금 미국과 혈맹의 전우가 아니라 서로가 피를 본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은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넘어오는 1세기를 살면서 전쟁의 광기를 경험하고 반전주의자 반핵주의자로서 거의 모든 학문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한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행동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1955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러셀- 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하여 핵무기 축소를 촉구했다. 1957년에 핵무기 확산을 우려하는 과학자들이 모인 첫 번째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의 주요 조직자였다. 1958년에 핵군축 운동의 창립회장이 되었다. 1961년에 반핵 시위와 관련하여 다시 한번 투옥되었다. 항소심에서 그의 2개월 징역형은 교도소 병원에서의 1주일로 단축되었다. 9년 후 9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행동가이자 영원한 현역이었다.
이와 같이 핵의 핵심은 러셀과 같은 천재도 풀기 어려운 기술적 문제인 동시에 인문적 문제이며 역사적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세계 패권질서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핵은 인류가 가지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공멸의 핵심문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류의 절대반지로 1945년 이래 등장한 핵은 직접 맞아본 자의 아픔만큼이나 핵을 둘러싼 설왕설래 외에도 핵의 핵심은 찬핵도 반핵도 아닌 1958년 세계적 석학 러셀의 행동인 핵군축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며 세계패권질서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일극체제로 자리 잡히고 지금껏 평화가 유지된 이유로써 핵군축은 핵의 핵심이자 절대반지로써 기능하고 있었지만 이 위험한 균형도 조만간 깨어질 위기에 봉착하고 있고 그 위기의 시작이 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아 본 극동아시아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