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부대끼면서 살다 보면 우리가 자연 속에서 태어나서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보면서 춘하추동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사철을 모르는 철부지로 한 생을 마감하기가 아주 쉬워진다.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둘러보며 주위 공간을 인식하고 춘하추동이라는 시간의 흐름까지 아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철부지 인간이 아니라 철을 아는 철든 인간이 되어 선한 세상이라는 공동체가 완성되는 법이다.
이처럼 춘하추동이라는 계절의 흐름은 별의 흐름이라는 역경易經을 만들어 내었고 역경易經에 기록된 확률에 근거한 문자와 숫자에 따라 시련試鍊과 역경逆境을 인간의 인지 범위 안에 넣으면서 온갖 희로애락 오욕칠정의 희비쌍곡선의 파고를 넘고 성장하여 한 사람의 완성된 인간으로 재탄생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요 숙명이다.
중추절仲秋節이라고 쓰고 추석이라고 부르는 음력 8월 한가위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설날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양대 명절이다. 겨우내 숨죽이고 만물의 생동을 알리는 설날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추위와 잔설이 우리를 위축시키지만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맞이하는 추석은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익고 영근 과일과 곡식을 추수하여 신과 조상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의 성격이 강하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가 되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는 군대 유머처럼 세상을 이루고 사는 인간 모두는 열심히 노력한 결과를 추수하는 것 못지않게 잘 나누고 분배하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긴다. 즉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문명 이후 인류의 오래도록 자리 잡은 본성 때문에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역사는 흘러왔다.
춘하추동이라고 하는 자연의 섭리가 흥망성쇠라고 하는 세상의 원리가 교차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추석명절은 가을이라고 하는 절기와 저녁이라고 하는 해는 저무는데 갈길은 멀다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고사처럼 섭리와 원리가 결합된 의미의 명절은 아닐까? 한번 유추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한가위라고 하는 한 해의 소출을 결산하여 마감하고 자르는 의미까지도 포함하는 민족의 명절이기도 한 중추절은 춘하추동의 세 번째 계절이자 흥망성쇠의 세 번째 단계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전국시대 오자서가 중얼거린 일모도원日暮途遠의 고사처럼 추석은 한 해를 마감하면서 마치 큰 가위처럼 정정당당하게 그동안의 노고를 평가하여 자르고 분배하는 의미의 명절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비록 명절기분에 취해 먹고 마시고 놀지라도 춘하추동의 세 번째 계절인 가을의 한가운데 중추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공동체가 사분오열 되어 삭풍이 부는 겨울의 들판에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내동댕이 쳐질 수도 있고 흥망성쇠의 세 번째 단계인 성장과 번영에서 폭삭 망하고 주저앉으면서 쇠락의 고속도로로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열쇠가 정당하게 나아가 정정당당한 한가위를 보냄으로써 나가 바로서고 나라가 바로 서서 정당하고 정정당당한 공동체 흥망성쇠의 원리와 춘하추동의 섭리를 이해하는 철든 국민으로 거듭날 때 철부지들은 사라지고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는 다시금 번영의 날개를 달고 웅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