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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자병자치自病自治 자병타치自病他治

by 윤해



처방의 폭포수로 상징되는 현대의학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야말로 폭포수 같은 처방으로 현대의학의 방향을 돌려놓을 방법은 정녕코 없는 것일까? 그리고 방법이 있다면 왜 현대의료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개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탄압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만 겨우 문제 앞에 설 수 있을 정도로 현대의학은 그 어떤 사회 문제에 우선하는 독보적 어젠다로써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현대의학이라고 하는 뱀의 똬리는 때로는 한없이 자비로운 인술의 모습으로 때로는 병마와 싸우는 전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성공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마치 팔색조 같이 윤색되고 덧칠되어 도무지 정체를 알 수도 파악하기도 힘든 그저 우리가 위험할 때 매달리고,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온전히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맡겨야 할 유일무이한 권위로서 그저 존경하고 신뢰해야 할 터부시 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과연 그런가?

유한한 생명을 사는 우리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결국 살다 사라지지만 식물과 다른 동물의 운명처럼 절대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존재인 동시에 우리 내부에서 기생하고 있는 마이크로 바이오 옴이라는 거대한 생태계와 더불어 소우주와 같은 40조 개 이상의 세포와 협업하고 조화하지 못하면 한 생을 온전히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러한 존재로 태어나 우주와도 같은 세포를 만들어 가진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문제와 고민 그리고 사고를 당하게 되면 죽기도 전에 혼비백산하면서 자병자치自病自治의 섭리는 까마득히 잊고 자병타치의 길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가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자들의 모습은 고대 샤머니즘이 지배하던 시대의 샤먼이나 주술사 또는 무당이었고 우주의 기를 불어넣어 소우주 인체를 치유하는 일종의 심리치료가 대세를 이루다가 농업혁명 이후 정주문명은 강력한 종교의 힘으로 질병을 치유하려 들었고 그 종교 지도자의 하수인들이 몰약을 제조하는 마녀나 연금술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체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파악한 서양은 해부를 통해 인체를 샅샅이 탐구하였고 여전히 인체를 소우주라고 믿었던 동양은 부처님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황제내경의 치료법을 갈고닦으면서 보이지 않는 기혈의 운행을 통해 질병치료에 다가갔다.

서세동점의 대항해 시대 이후 참혹한 대량살상 시대가 도래하면서 서양의학은 끊임없이 공급되는 전쟁 부상자과 전사자들을 대상으로 생명을 건진다는 숭고한 미명 아래 원도 한도 없는 인체 해부를 통하여 오장육부는 물론 골격과 혈관 그리고 마침내 현미경을 발명하여 세포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과학으로서 의학의 체계를 완성했다.

이것은 곧바로 인체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뒤안길로 밀어내고 의사 만이 환자를 치료할 자격이 있다고 하는 끈질긴 세뇌를 통해 환자가 되는 엄혹한 시간이 오면 자병자치自病自治는 상상도 못 하고 의사에게 온전히 자신의 심신을 맡기는 자병타치自病他治의 세상을 열고 만 것이다.

오늘날 보통 사람들은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 되고 병원에 가면 또 당연히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며 의사가 처방해 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사가 조제한 약을 먹어야 병세가 호전되고 병이 나아지게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쩌면 믿거나 말거나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모두 다들 약속한 것과 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엄중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생명계의 역사에서 외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99.99% 확실한 주류의견도 의심받고 도전받아야 그 생명은 전멸을 면할 수 있게 우리는 진화했다. 즉 돌연변이 하나가 생명의 끈을 이어간다는 사실은 38억 년 생명 진화의 역사에서 매번 반복되는 흔한 사건에 불과하다.

비록 주류사회의 합의는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그 합의가 생명을 다루는 미시계의 섭리가 대상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소수의견이라고 해도 묵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생명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다. 하물며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서 열 달 동안 우리가 우리의 몸을 만들고 나왔다는 생명창조 세포창조의 장본인이 우리 자신이었다는 아련한 기억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창조도 아닌 수리 정도는 너끈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며 자병타치自病他治가 아닌 자병자치自病自治가 맞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지 않을까?

처방의 폭포수로 왜곡된 현대의학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껏 가져왔던 우리 안의 고정관념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주류사회가 심어준 세뇌를 타파할 폭포수 같은 처방 하나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의 고르디우스 매듭은 풀려고 하면 영원히 풀지 못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그랬던 것처럼 매듭을 단칼에 자르면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대의학이라는 복잡한 매듭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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