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죠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약자 '복서'에 공감하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동물농장』중에서-
매년 11월 초, 핀란드에서는 ‘세금의 날(Veropäivä)’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이벤트가 열린다. 모든 국민의 전년도 소득이 공개되고, 언론은 고소득자 리스트를 만들어 헤드라인으로 보도한다. 개인의 소득과 세금 정보를 이토록 광범위하게 공개하는 나라는 매우 드물기에, 핀란드는 국제적으로도 가장 투명한 조세 제도를 가진 국가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지난해(2025년) 11월 발표에서도 핀란드 전체 소득 1위는 변함없이 음식 배달 플랫폼 ‘볼트(Wolt)’의 공동 창업자 미키 쿠우시(Miki Kuusi)였다. 1989년생으로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그는 2024년 한 해 동안 약 8,060만 유로(한화 약 1,160억 원)의 소득을 기록했다. 20대에 창업한 회사가 몇 년 전 미국 도어대시(DoorDash)에 인수되며 단숨에 핀란드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그는, 이후 줄곧 소득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핀란드 언론에는 그와 함께 볼트를 창업했던 동료들의 근황도 종종 소개된다. 그중 엘리아스 알토(Elias Aalto) 씨의 인터뷰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거부가 된 후 삶의 목적을 잠시 잃었다고 고백하며, 가족과 함께 세계 여행을 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찾고 있다고 했다. “돈이 자유를 줄 수는 있지만,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그의 말은, 아직 큰 부를 가져본 적 없는 나로서는 알 듯 말 듯한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찬란한 ‘볼트(Wolt)’ 성공담의 이면에는 전혀 다른 온도의 기사도 존재한다. 혹한의 겨울, 대기 장소를 찾지 못해 야외를 방황하는 볼트 배달 라이더들의 이야기다.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 쉴 곳을 마련해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청을 본사는 거절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삶의 방향성을 고민할 정도로 거부가 되었고,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얼어붙은 거리에서 떨고 있는 이 ‘동상이몽’의 차가운 현실!
‘빈익빈 부익부’는 원래 자본주의가 부를 쌓아가는 피할 수 없는 원리라고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평등’을 사회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북유럽 복지국가 핀란드에서 이런 극명한 대비를 거의 동 시간적으로 목격하는 것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핀란드 사회의 변화를 보며 이런 당혹감을 느낀 적이 꽤 여러 번이다. 2023년 총선 이후 출범한 현 정부는 북유럽에서 가장 우경화된 정부로, 이들이 내놓는 정책들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믿어왔던 핀란드의 모습과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현재 핀란드 경제는 국가 부채 증가와 마이너스 성장으로 몇 년째 고전 중이다. 하지만 경제보다 더 빠르게 추락하는 것은 핀란드 정치인 것 같다. 현 정부는 사회복지 혜택을 삭감하고 이민 정책을 강화하며 핀란드가 당면한 위기의 책임을 저소득층 이민자에게 돌리려 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이민자를 경제적 기여도에 따라 복지 혜택만 누리는 ‘나쁜 이민자’와 고소득을 올리는 ‘좋은 이민자’로 이분화하고 있다. 심지어 극우파 한 정치인은 공영방송에서 나쁜 이민자 집단이 “핀란드를 돼지우리와 학살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혐오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는 이런 발언에 대해 당이나 핀란드 공권력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도 핀란드 평균 소득의 절반밖에 벌지 못하며 복지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볼트 라이더들 역시 그들의 눈에는 ‘나쁜 이민자’로 보일 것이다. 현 정부의 기준대로라면 나 역시 안타깝게도 ‘나쁜 이민자’다. 최근 푸드트럭 비즈니스를 접고 다시 실업급여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한 ‘실업가(實業家)’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시작했으나, 내게 지금 남은 것은 ‘실업자(失業者)’라는 딱지다.
이런 현상은 핀란드의 저명한 정치학자 미꼬 쿠이스마(Mikko Kuisma) 교수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그는 우경화된 북유럽 정부의 정책 기저에 ‘복지 국수주의(Welfare Chauvinism)’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복지 국수주의란 복지 혜택은 자국민에게만 한정되어야 하며 이민자는 이를 빼앗아가는 존재라는 배타적 논리다.
쿠이스마 교수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위기는 이민자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이민자 ‘통합 실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낡은 북유럽 복지 모델이 볼트 라이더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민자를 사회적 비용인 ‘부담’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재정의해야 하며, 변화된 노동 환경에 맞춘 ‘업데이트된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 속 말 ‘복서’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과로로 쓰러지자, 믿었던 권력층 돼지들에 의해 도살장으로 팔려 가는 신세로 전락한다. ‘복서’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이민 온 후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도살장까지 끌려간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어느새 ‘나쁜 이민자’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혀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동물농장》의 서글픈 문장은 이곳 북유럽 복지국가 핀란드의 '동물 농장’에서도 안타깝지만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