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프 창업자들이 만든 배달 로봇, 핀란드 일상이 되어가다
요즘 나의 하루는 주로 AI와의 대화로 채워지고, 식료품은 로봇이 배달해 준다. 어릴 때 어린이잡지에서 보았던 미래세계가 나의 일상이 된 것이다. 만화가들의 상상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오늘도 마트에 직접 가기가 귀찮아 로봇을 불렀다. 작년 초에 처음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핀란드에서는 이 서비스가 상용화된 지가 벌써 4년이나 됐다고 한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앱을 열고 주문을 넣으면 보통 한 시간 안에 로봇이 집 앞까지 찾아온다. 이 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은 내 생각엔 가격이다. 사람이 배달해 주는 반 정도 가격인 2.9유로(한화 약 5,000원)만 내면 된다. 귀여운 로봇의 외모는 덤이다.
아직 아쉬운 점이 있다면, 건물 앞까지 나가서 로봇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에게 들은 바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현관까지 배달해 주는 기술은 이미 완성됐다고 한다. 다만 상용화를 위해서 비용 맞추는 작업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이 작은 로봇이 건물 3층에 있는 우리 집까지 올라올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보안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로봇이 오는 길은 주문자 앱에서만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이동 중 다른 사람이 강제로 뚜껑을 열려고 시도하면 경보음이 울리며 위치가 추적된다. 로봇이 도착한 후, 앱에 있는 버튼으로 뚜껑을 열면, 로봇은 멋진 노래로 화답한다. 고객은 앱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지정할 수도 있다. 식재료를 꺼내고 앱 종료 버튼을 누르면, 로봇은 경쾌한 음악과 더불어 작별 인사를 하고 왔던 길을 돌아간다.
이 편리하고 귀여운 로봇은 누가 만들었을까?
익숙한 회사 이름이 먼저 눈에 띈다. 스카이프(Skype)의 공동 창업자였던 아흐티 헤인라(Ahti Heinla)와 야누스 프리스(Janus Friis)가 다시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 스타쉬 테크놀로지스(Starship Technologies)가 로봇의 아버지다. 2003년 에스토니아에서 작은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던 스카이프는 인터넷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무료로 통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획기적 혁신을 이뤄낸 회사였다. 그 주역들이 이번엔 동네 배달의 미래를 바꾸려 한다.
본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지만, 엔지니어링은 에스토니아 탈린, 핵심 R&D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2022년 핀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됐으며, 지금은 세계 7개국 270개 이상의 지역에서 2,700대가 넘는 로봇이 매일 달리고 있다.
이 자율주행 로봇의 스펙을 보면 어떻게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배달을 잘 해냈는지 알 수 있다. 조그만 로봇 안에 무려 카메라만 12대, 거기에 초음파 센서와 레이더까지 달려있다. AI와 GPS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루트까지 계획할 수 있다니, 상당히 스마트한 녀석이다.
차도(車道) 아닌 인도로 다닐 수 있으며 횡단보도에서도 차가 오지 않는 안전한 타이밍을 스스로 판단하고 건넌다. 핀란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쌓여 사람도 걸어 다니기 힘든데, 이 로봇은 그런 눈길도 대체로 잘 달린다. 눈 속에 처박힐 것 같으면 몸통을 들어 올려 쌓인 눈을 넘는 스노우 모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있으면 그 속에서 허우적대며 안타깝게 공회전만 계속하기도 한다.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인도에서 눈 속을 빠져나오려 버둥거리는 로봇과 마주쳤다. 바로 그 순간, 건너편 초등학교 아이들이 목청껏 소리쳤다.
항상 로봇이 인간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도 로봇의 흑기사가 될 수 있다. 나는 '기회는 chance'라는 듯, 재빠르게 로봇 앞 눈길을 치워주었다. 로봇은 다시 임무 수행을 위해 씩씩하게 떠났고, 아이들은 그 뒤에 대고 환호를 보냈다. 에스토니아에서도 순찰 중이던 경찰관이 눈에 갇힌 로봇을 도와줘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다. 스타쉬사 측에서는 이런 선한 사마리아인들에게 "로봇도, 그리고 우리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며 공식적인 감사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식품 무게까지 합치면 꽤 무거워지는 만큼, 통째로 들어 올리는 건 권장하지 않는다고.
동네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굴러가는 배달 로봇. 아직은 가끔씩 온기 어린 '휴먼 터치'를 필요로 하는 이 로봇은, 그래서 아이러니하지만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