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올해 일곱 명의 여성이 살해된 방식

세계 1위 행복국가, 왜 파트너 폭력은 멈추지 못하는가

by 어나미

올해 1월부터 3월,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핀란드에서 일곱 명의 여성이 남자 파트너에 의해 살해됐다. 핀란드 일간지 일타레흐티(Iltalehti)에서는 이 속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연말에는 희생자가 40명까지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년보다 2~3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이는 단순한 범죄 통계가 아니라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다.


예방할 수 있었던 죽음들

올해 발생한 7 건의 살인 사건에서는 공통된 패턴이 보인다. 폭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고 습관화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신고를 했어도 기소로 이어지지 않거나, 피해자 스스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진술을 철회한 경우도 있었다. 폭행은 검찰에 의해, 혹은 피해자 스스로 ’경미한 폭력’으로 축소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7 건 중 접근금지 명령이 제대로 작동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경찰이 아예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거나, 피해자가 그 명령을 스스로 취소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쓴 핀란드의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물었다.

"가정 폭력 사건에서 가족 간의 '화해'는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한 해결책인가?"

화해 후에 살인으로 이어진 케이스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은 폭력의 신호를 반복적으로 놓쳤다. 핀란드 언론은 대부분의 사건이 예방이 가능했음에도 많은 희생자가 생긴 것에 대해 “이는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실패”라 선언했다. 핀란드 경찰청장에 따르면 가정 폭력 중 경찰에 신고되는 것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나머지 90%는 문 안에서 조용히 폭력에 무너지고 있다.


조용한 나라의 조용한 폭력

이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나라 핀란드에 살면서, 가끔씩 신문 헤드라인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가족 혹은 연인 사이에 벌어진 살인 사건이 1면에 크게 실리는 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해치는 연쇄살인범은 거의 없다. 대신 가족이나 파트너 간의 살인율이 유독 높다. 핀란드에서 살인으로 목숨을 잃은 여성의 약 80%는 파트너나 가족에 의해 사망한다. (참고로 EU 평균은 약 55%이며, 스웨덴은 약 50~55%, 노르웨이는 약 60% 수준이다.)


벌써 10년이 훨씬 넘은 일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전시된 석간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나온 ”부유층 가족 살인 사건”이란 헤드라인을 보게 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오늘 신문 1면 봤어?” 그리곤 그 사건의 피해자가 자기 이모라는 것이 아닌가. 가해자는 이모부였다.


겉으로 보면 이 부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가정이었다. 이모부는 회사의 CEO였고, 이모는 간호대학 학장이었다. 그런데 술을 마신 이모부가 권총으로 아내를 쏴서 죽였다. 내 주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 때 참 많이 놀랐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믿기 힘든 일이 내게도 벌어졌다. 남편은 이혼이 구체화되자 태도가 급격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발길질에서 시작했다. 믿기지 않았다. 오늘만 벌어지는 1회성 행동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는 손이 상체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그 다음다음 날에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내가 그 집을 떠나는 몇 주간 동안 계속됐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중단할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도 했다. 믿지 않는 눈빛이었다. 결국 동네 경찰서에 신고를 하러 갔다. 경찰은 공감하는 따뜻한 눈빛으로 내 말을 차근차근 들어주었다. 그런데 남편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가 남편을 만난 뒤, 입장은 벌써 많이 바뀌어 있었다.

"폭력의 증거 부족으로 아무도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경찰에게 보여주었던 내 부은 손은 증거가 되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남편의 진술에 의하면 ”부인이 실수로 넘어져 다친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평소 남편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자랑하듯 말했었다. 그렇다면 그가 생애 첫 거짓말을 그 경찰 앞에서 했다는 말인가.

그 순간, 나는 철저히 혼자임을 깨달았다. 핀란드 공권력도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보호해 줄 수 없었다.


왜 핀란드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남녀 성평등 지수가 세계 최상위권인 나라에서 어떻게 파트너 폭력 피해 여성 비율이 EU 평균보다 훨씬 높을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이를 "핀란드의 조용한 위기"라 부른다.


핀란드에서 가정 폭력과 알코올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2023년 기준 핀란드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연간 8.7리터로,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높다. 특히 한꺼번에 많이 마시는 폭음 문화(Binge Drinking)가 문제다.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핀란드 사람들 중, 이별이나 이혼 같은 극한 상황에서 폭음을 하게 되면 추악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일부 존재한다.


헬싱키 대학교 연구팀은 핀란드 인구의 약 2%가 가진 HTR2B라는 특이한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 변이는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핀란드 사람들의 유전자에서 유독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고 한다. 이 변이는 평소에는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술이 들어가는 순간 충동 조절 능력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변이는 ‘폭력 유전자*’라고도 불린다.


핀란드에서 가정 폭력은 오랫동안 '사적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핀란드 사회는 암묵적으로 '자신의 사적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여성들이 폭력을 당하고도 쉽게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문화적 압력과 관련이 있다.


무엇이 바뀌고 있는가

2025년 2월, 핀란드 정부는 '2024-2027 성평등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핵심은 가정 폭력 사건에서의 '조정(Mediation)' 절차 폐지피해자 쉼터 확대다. 사회보장부 장관 산니 그란-라소넨은 단호히 말했다.


"가정 폭력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폭력은 조정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었다고 현실이 즉시 바뀌지는 않는다. 올해도 벌써 일곱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의 닮은 꼴, 데이트 폭력

핀란드 기사를 읽을 즈음 한국에서도 데이트 폭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사건은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했던 한 명문대 의대생의 범죄다


최근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에 의하면, 지난 한 해 동안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137명에 달한다. 살인 미수까지 합치면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22.5시간마다 한 명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에 처한다는 의미다.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친밀한 관계의 폭력은 경미한 사건으로 축소되기 일쑤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풀려나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에필로그 — 악의 평범성

가정 폭력을 경험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


폭력이 시작됐을 때 '화해'로 무마하는 것은 다음 폭력으로 가는 문을 스스로 여는 '짓'일 수 있다. 법은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는 스스로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는 게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폭력은 직접적 피해자만 상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다. 핀란드 국립보건복지원(THL)의 아동정신과 의사 유카 매켈라(Jukka Mäkelä) 박사로부터 직접 들었던 결코 잊지 못할 말이 있다.


“부모 사이의 폭력을 목격하는 아이는 자신이 직접 맞는 것과 똑같은 강도의 충격을 받습니다.”


나는 내가 ’맞는 여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폭력의 가해자는 특별히 우악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참관하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유대인을 잔인하게 죽인 사람들이 주변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에서 나온 책이 바로 유명한《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다.


지금 필명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아픔을 꺼내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고, 창피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여성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본다.


2024년, 프랑스에서는 충격적인 재판이 열렸다. 지젤 펠리코(Gisèle Pelicot)라는 여성은 남편이 수면제로 의식을 잃게 한 후, 수십 명의 남자들을 사주해서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남편을 고소했다. 그녀는 피해자로서 익명으로 재판을 진행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그녀가 한 말은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수치를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다."

(La honte, ce n'est pas à nous de l'avoir, c'est à eux.)


폭력을 당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나를 지키고 세상을 바꾸는 큰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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