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Ⅲ. 심연에서 별빛으로,
‘스크리아빈의 문이 열리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을까.
스크리아빈의 음악이 내 마음에 처음으로 훌쩍 들어온 순간이 있었다.
‘새내기’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던 3월과 4월의 어느 봄날.
대학 캠퍼스의 공기는 아직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었지만, 햇살은 분명 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막 시작되는 계절.
나 역시 피아노 앞에서 앞으로 펼쳐질 나의 시간들을 상상하며 들떠 있던 때였다.
전공 수업 시간이 되어 교수님 레슨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4학년 선배 언니는 ‘스크리아빈 피아노 소나타 4번 2악장’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무심코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내가 알던 음악이 아니야. 이 소리는 뭐지?’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소리였다.
그것은 단순히 음표가 이어지는 선율처럼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가볍고 투명한 존재가 공기 속을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했고,
햇빛을 머금은 작은 입자들이 허공에서 반짝이며 점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비일까.
꽃잎일까.
아니, 잠깐만.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는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어떤 향기까지 느끼고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막 피어난 봄의 꽃잎 같은 향기.
차갑고도 투명한 공기 위에 은은하게 번지는 빛의 냄새 같은 것.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떴다.
그리고 선배 언니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건반을 깊게 누르기보다 스치듯 지나가는 손끝,
리듬을 타며 빠른 박자 속에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도 날렵한 손목,
코드와 코드 사이의 프레이즈를 페달로 섬세하게 직조해 내는 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리를 빚어내는 몸의 움직임 자체를 보고 있는 듯했다.
어떤 화성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피어올랐다가,
다음 순간에는 금방 폭발하듯 변화무쌍한 색채로 번져 나갔다.
그 모든 움직임을 이끌어가는 팔의 사용은 감각적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자유로웠다.
그때 처음 알았다.
어떤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음악은 오래 잠들어 있던 감각을 조용히 깨운다는 것을.
그날 선배 언니의 연주는 내게 그런 경험이었다.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늘 그런 식으로 다가왔다.
멜로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내면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어 하나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심연처럼 깊고, 때로는 별빛처럼 아득하게 반짝이는 상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 봄날의 공기와 레슨실의 상쾌함,
그리고 막 수업이 시작되기 전의 긴장감이 동시에 떠오른다.
무엇보다 선배 언니의 그 음색이 놀랍도록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최근,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스크리아빈 연주를 다시 들으며 나는 오래전 열렸던 그 문 앞에 다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심연의 깊이와, 이제야 보이는 별빛의 방향이 지금의 내 안에서 다시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아, 보랏빛 자수정의 빛이 스며드는 첫소리란.’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마치 보랏빛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천천히 열리는 기분이 든다.
마음이 순간 붕 떠오른다.
마치 손에서 놓친 풍선 하나가 하늘 위로 조용히 올라가듯이.
이 음악은 처음부터 우리를 안정된 땅 위에 세워두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론가 가볍게 들어 올려, 익숙한 중력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첫마디의 울림은 ‘아, 아름답다’라는 감상보다 먼저,
‘여긴 어디지?’라는 낯선 감각을 불러온다.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화성은 대개 중심을 향해 돌아오려는 힘을 갖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처럼, 결국 마음이 놓이는 자리로 이끈다.
그런데 스크리아빈은 처음부터 그 익숙한 길을 벗어난다.
첫 코드의 울림은 마치 땅을 딛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선명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빛과 안개가 섞인 미지의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래서 이 첫소리는 ‘설명’보다 먼저 ‘색’으로 다가온다.
내게는 그것이 늘 ‘보랏빛’이었다.
차갑지만 깊고, 어두우면서도 어딘가 빛나는 자수정의 색.
게다가 악보에 적힌 con voglia—‘열망을 가지고’라는 지시어는
이 음악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저 너머의 어떤 세계를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스크리아빈 자신이 현실의 경계를 넘어 빛과 영혼의 세계를 향해 손을 뻗는 듯...
이 부분의 음악이 흐를 때면, 나는 늘 ‘소리를 본다’는 감각을 떠올린다.
어쩌면 스크리아빈은 먼저 어떤 빛의 장면을 마음속에 본 뒤, 그것을 소리로 옮겨놓은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피아노에서 이렇게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여기서 오른손의 코드 연타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난 ‘빛이 부서지는 소리’로 들린다.
마치 밤하늘의 별빛이 한 줌씩 조용히 쏟아져 내리는 순간처럼,
또는 잔잔한 호수 위에 햇빛이 잘게 부서져 반짝이는 장면처럼.
그래서 이 소리는 절대 단단하게 눌러서는 안 된다.
건반을 찍는 것이 아니라, 손끝이 가볍게 스치며 빛을 흩뿌리듯 내려앉아야 한다.
페달 위로 번져 나가는 잔향까지도 하나의 빛처럼.
마치 손 안의 다이아몬드 가루를 조심스럽게 허공에 흩날리듯,
한 알 한 알이 반짝이며 떨어지되 결코 무겁지 않게.
‘아,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엄청난 소리들의 향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야.’
이건 소리를 내는 일이 아니라, 분명 빛을 만지는 일에 더 가깝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이 빛의 순간을 과연 어떻게 들려줄까.
이건 소리를 내는 일이 아니라, 분명 빛을 만지는 일에 더 가깝다.
스크리아빈 피아노 소나타 4번의 2악장.
‘아, 어깨가 저절로 들썩거려지는 이 매력적인 시작이란.’
이 악장이 시작될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그 선배 언니의 손목을 떠올린다.
툭, 하고 허공으로 튀어 오르듯 유연하게 움직이던 손목.
그리고 그 레슨실의 공기까지도.
마치 중력을 살짝 비껴가며 먼저 날아오르려는 몸의 기억처럼.
처음부터 pp로 시작되는 이 음악에는 이미 비상 직전의 긴장이 숨어 있다.
마치 새가 날개를 접은 채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다음 순간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이다.
주제는 코드로 층층이 쌓여 있지만, 이상하게도 결코 무겁게 들려서는 안 된다.
분명 음들은 촘촘히 모여 있는데, 귀에는 옆으로 스치듯 가볍게 지나가야 한다.
빠른 템포 속에서도 마치 공기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가야 하니까.
아마 그래서 이 악장이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코드의 밀도는 분명한데, 연주자는 그 무게를 감쪽같이 지워야 한다.
이쯤 되니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절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휴, 정말 스크리아빈은 연주자들에게 너무한 것이 아닐까.’
도약은 크고, 속도는 빠르다.
조금만 힘이 과해져도 소리는 금세 뭉개지고 만다.
그래서 바로 이 부분에서 명징한 아티큘레이션과 정확한 타격감이 살아날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게도, 듣는 관객에게도.
음 하나하나가 허공에서 반짝이며 살아 움직이는 순간, 듣는 이의 심장까지 함께 뛰기 시작한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특히 12/8박 안에서 살아나는 당김음은 이 음악에 ‘맥박’을 불어넣는다.
리듬은 앞으로 달려가려 하면서도, 어느 순간 살짝 뒤로 끌어당기며 긴장을 만든다.
그 미묘한 생동감을 정확히 구현해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첫 부분만 들어도 늘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맥박’이 한순간에 뛰어오르는 ‘전율’.
아, 정말 어쩔 수 없나 보다.
하하.
어쩌면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귀보다 몸이 먼저 기억해 버리는 종류의 음악인지도 모른다.
와, 이 부분에 이르러 나는 글을 쓰다가 잠시 컴퓨터 앞에 멍하니 있었다.
그 벅찬 환희에 젖어서 손이 떨리는데? 하하
정말 음악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붙잡을 수 있다니.
악보에 빽빽하게 쌓인 밀도 높은 코드와 fff의 등장은 순간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확실히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사뭇 다르다.
라흐마니노프가 깊은 감정의 파도를 밀어 올린다면, 스크리아빈은 빛과 환희가 보이는 허공을 향해 ‘비상’한다.
스크리아빈은 빛과 환희가 보이는 허공을 향해 ‘비상’한다.
그래서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4번은 중력을 벗어나 한순간에 터져 나오는 황홀에 가깝다.
‘아, 스크리아빈은 결국 별빛을 향해 비상하려는 인간의 마음을 쓰고 있었구나.’
조용히 허공을 바라보던 새는 마침내 날개를 펼쳤고,
밤하늘에 흩어지던 빛은 더 이상 ‘점’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광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찰나, 듣는 우리의 심장도 함께 솟구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스크리아빈 4번 2악장이 끝내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일까.
음악은 끝났는데도 몸은 아직 그 비상의 궤적을 따라 날고 있으니까.
<그다음은?>
이 별빛의 비상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그리고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이 찬란한 환희를 어떤 소리로 들려줄지.
그 궁금증의 다음 문은 이번 주 토요일 밤 9시 라이브에서 함께 열어보려 합니다.
‘심연에서 별빛으로.’
이제는 글을 넘어, 소리로 만날 시간입니다.
일시: 2026년 4월 4일 (토) 밤 9시
주제: ‘스크리아빈 왜 전율할까?’
채널: 유튜브 '조윤미의 크레셴도’
여러분의 인생이 크레셴도가 되는 그 결정적인 순간, 함께 공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