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장소는 아이들에게 학문의 전당이자 사회성을 길러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때때로, 예기치 않은 도전과 시련의 장이 되기도 한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 첫 중간고사를 보게 되었다. 학교에 초침 시계 즉 수능 시계를 가지고 가야 한다며 누나 수능 시계를 찾고 있었다. 교실에 시계가 있을 텐데 초침 시계를 개인별로 왜 가지고 가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들아! 시계가 왜 필요해? 학교 시계로 시간 재는 거 아니야? 교실에 시계 있잖아?”
“시험 기간 동안 교실 시계는 모두 제거해. 그래서 각자 가지고 온 시계로 시간 조절을 해야 해!”
“왜 그런 짓을 해?”
“예전에 어떤 학생이 학교 시계에 맞추어 시험시간을 조절하다가 마지막에 답을 옮겨쓰는 데 종이 치자, 답지를 걷어갔나 봐. 그래서 부모가 교육청에 신고하고 항의하면서 그 뒤론 무조건 자신이 시계를 가지고 와서 그 시계로 시간을 각자 관리하는 거로 바뀌었데.”
아이들 시험이 대학입시의 내신성적과 관련된 사항이라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데,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두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 써 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언제나 불만 없이 생활해 준 아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3일째 시험을 보고 온 아들은 금요일이라 마음 편히 저녁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식사 후 우리는 딸 방 침대에서 서로 껴안고 큰소리로 웃으며 뒹굴면서 장난치고 있을 때, 아들이 갑자기 얼굴색이 바뀌면서
“엄마! 나 오늘 사회시험 볼 때 기분이 별로였어.”
“왜에? 무슨 일 있었어?”라며 나도 웃음을 멈추고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시험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 문제가 답이 알쏭달쏭한 거야. 그래서 2번으로 체크했다가 다시 4번으로 고쳤는데, 아무래도 2번이 맞는 거 같아서 손을 들었어.”
“근데?”라며 나도 점점 심각한 표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남자 선생님이 와서 왜 그러는지 묻기에 OMR지 답지를 바꾸어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냥 써!”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난 무슨 말인지 몰라서 “예?”라고 대답했거든. 그랬더니 “그냥 다시 체크하라고.”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한번 화이트로 지워서 지저분한데 어디에다 체크하라는지 몰라 다시 한번 “예?”라고 했더니, 손가락으로 화이트 칠한 곳을 다시 집어주시더라고. 그래서 나도 “아하!”라고 답했거든. 그랬더니 갑자기 큰소리도 “병신인가?”라며 주위에 다 들린 정도로 말씀하시고 가는 거야. 황당했는데 시간이 5분 밖에 없어서 나는 그냥 답지를 옮겨썼거든. 이런 상황에서 나만 기분이 나쁜 거야?”
“아니! 미친 거 아니니? 교체해 달라면 교환해 주면 되지 뭘 그렇게 말을 해? 설사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도 겉으로 말하면 안 되지? 그리고 시험시간에 선생님이 그렇게 떠들어도 되는 거야?”라며 나는 흥분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고등학교에서는 처음 시험이라. 화이트로 한번 칠한 곳에 또 칠해도 되는지도 몰랐고.”라며 엄마가 자신의 편이 대주자,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아들이 말할 성격도 아니고. 누나에게 물어보자.”
이 말을 들은 딸은 가만있으면 안 된다며 흥분을 멈추지 못했다. 시험시간에 감독관이 말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병신이야”라는 표현을 쓰냐는 것이다.
딸 말에 의하면 시험시간에 감독관의 목소리 때문에 시험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관은 웬만하면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단다.
“엄마 아들! 너는 그 소리 듣고도 가만히 있었니? “뭐라고요?”라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났어야지?”라며 누나는 흥분해서 동생을 질책하고 있었다.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그럼 내가 뭐라고 해? 선생님께.”라며 아들은 기가 죽어 대답했다.
“딸! 아들이 그 정도 말한 위인이면 엄마가 신경도 안 쓴다. 착하기만 해서리.”라며 동생 편을 들자,
“아니 저 자식은 지를까도 몰라요. 답지 내고 앞으로 가서 “선생님! 이거 모르면 병신인가요?”라며 웃으면서 한마디 해야지. 나라면 그냥 안 있어.”라며 계속 흥분을 멈추지 못했다.
“이쁘나! 엄마도 그게 걱정이긴 한데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고. 문자를 먼저 보내자. 주말이고 밤이니.”라고 말하자, 딸은 내 핸드폰을 달라며 자신이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오늘 아들이 사회시험 중 감독 선생님께서 OMR를 새로 건네주는 상황에 선생님의 비속어 사용을 들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상담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편하실 때 전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문자 받고 바로 확인하셨지만, 월요일 오전까지 연락이 없었다. 학기 초 상담 문제와 수련회 문제를 해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또 발생했으니 신중하게 처신하는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에 문자가 왔다.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해당 선생님과 연락이 늦어져서요. 일단 상황 파악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담임이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모르는 메시지였다. 이 정도의 답변이면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당 선생님과의 연락이 늦었다기보다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학교에서 계속 일어나는 것에 나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입학하자마자 아들이 학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난한 가정의 문제아로 취급했던 담임의 무식한 태도라든가. 아들이 수련회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아이에게 신체적 결합이 있는 게 아니냐?’라며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더니만.
‘아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대하는 걸 해결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이를 알지도 못하는 시험 감독관이란 선생님까지 시험시간에 막 말을 하는 걸까?’ 학교 선생님들의 수준이 의심스러웠다.
외고나 과학고도 이럴까? 이 학교도 거기 못지않은 곳이라고 들었는데. 동네가 안 좋아서 그런 건지. 부모님과 아이들 수준을 무시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직 예전의 만행이 없어지지 않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바쁘실 텐데 이런 일로 일을 더 만들어 드리게 되었네요. 혹시 그 선생님이 누구신지는 아셨는지요? 우선 저와 이야기하시기 전에 시험 보는 아이에게는 아무 말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 선생님에 관한 것은 고사 기간이라 정식 절차를 밟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답변만 왔다.
갑자기 정식 절차를 밟는다는 말에 일이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선생님의 정중한 사과 한마디였다. 일을 키우고 싶진 않았다. 나는
“절차까지는 하지 않으셔도 될듯요. 담임 선생님과 저와 통화하고 조용히 처리해 주세요.”라는 문자를 남기자, 오후에 전화가 왔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엄마의 부재를 빨리 느낀 아이들은 모든 일들을 스스로 알아서 해주었다. 학교 일에 나를 관여시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고등학교에 가자마자,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기니 마음에 걸렸다. 왜 우리 아이에게만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기는지 걱정이 되었다. 첫 출발이 중요한데 뭔가 삐걱되는 느낌이 엄마로서 불안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교육의 장이 항상 안전하고 긍정적인 경험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부모가 직접 나서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