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때로는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도구이다. 하지만, 반대로 잘못 입을 놀리면 상대에게 큰 상처나 피해를 줄 수 있는 무서운 무기가 또한 언어이다.
담임 선생님은 아들이 시험에 들어간 오후에 전화를 주셨다. 그 목소리는 학기 초 상담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친절 그 자체였다. 나는 문제의 선생님과 이야기 해봤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담임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했다.
교장, 교감 선생님께 보고했다며 그분들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그 중심에 내 귀한 아들이 있었다. ‘그 말을 한 선생님은 어떤 인물이기에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병신인가?”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무게는 생각보다 컸다.
나는 왜 일을 이렇게 확대했냐면서 놀람을 표시했다. 담임은 평소 같으면 아들과 나만 이해시키고 넘어갈 수 있지만, 시험 때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단다.
나는 ‘그 선생님이 뭐라고 말했을까?’가 궁금했다. 대부분 이런 경우, 별말 안 했다며 아이의 잘못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학기 초 담임과 통화하면서 계속된 거짓말과 모든 잘못을 아들 성격으로 몰아가는 걸 보면서 좋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인격이 제대로 된 선생님이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그 선생님과는 이야기 못 하고 같이 들어가신 여자 선생님에게만 확인했다고 했다. 여기서 내가 먼저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병신인가? 그 말이요?”라고 말하자, 담임 선생님은 당황스러움을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새끼라는 말을 했다는데 병신이라고까지는 제가 못 들었고요.”라며 당황해했다. 내가 먼저 ‘병신인가?’를 말해 버린 거다. 담임은 그냥 좋은 뜻으로 지나가듯이 “새끼야!”라고 말했다는 줄 알았단다. 여기서도 선생님의 거짓말이 느껴져, 나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 감독 선생님의 변명을 듣지 못했다는 건 그 선생님이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 성격을 아는 담임은 교장·교감 선생님께 먼저 보고한 것 같다. 함께 감독한 여자 선생님은 상황을 정확히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한 욕은 기억나지 않을 수 있었다.
속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담임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아무리 아이가 선생님 보시기에 한심해도 속으로 욕하는 건 이해되지만, 모든 학생이 다 들릴 정도로 시험 도중에 “병신인가?”라는 표현은 심한 게 아니냐며 따졌다.
담임은 평상시 같으면 자신이 해결할 수 있지만, 고사 기간이라 자기 손을 떠났다며 피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런 일이 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선생님께만 말씀드리는 거니 여기서 마무리해달라고 했다.
선생님도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학교에서도 모든 선생님께 주의를 줄 거고, 그 선생님도 절차상 처리할 거란다. 나는 그 선생님의 절차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담임 선생님은 우회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나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함께 담임 선생님의 무력함을 느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교육자의 언어 사용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사건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아이에게 솔직하게 그때 자신도 모르게 실수로 나온 말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와 아는 선생님도 아닌데 시험 중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건 인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들이 중학교도 남학교를 나왔지만, 선생님들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라 ‘혹시 이 학교가 문제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학기 초엔 담임이 아이들에게 욕하고 다니고, 그 사실을 아는 다른 선생님은 “너희 담임 아직도 욕하냐?”라며 물어보았다고 하고. 교육자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지 이해 못 할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을 텐데 누구 한 명 항의한 적이 없었다는 게 더 신기했다. 다른 부모들은 자녀와 어떤 이야기하는지도 궁금했다. ‘정말 성적 외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소중한 자녀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왜 관심이 없는 걸까?’
학생들 또한 자신들에게 그런 부당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선생님을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존경하는 마음에서 이해하는 건지? 아니면 딸 말처럼 자신들을 까는 소리인지 아닌지 구분 못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딸 말로는 여자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거란다. 이 학교도 남녀 공학이다. 그렇다면 남학생들한테만 이런다는 건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나도 교육자로 있었지만,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학교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증언하신 선생님께서 욕을 하긴 했지만, “새끼야!”라는 말은 그냥 좋게 “왜 바꿔?”라는 의미로만 생각했었단다. 그러면서 정말 “병신인가?”라는 언어를 사용했는지는 다시 조사해 보겠다고만 했다. 나는 더 이상의 조사는 필요 없고 아이에게 진정한 사과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 그 선생님이 인정도 안 하신 거 같은데 그 자존심에 아이에게 사과할 수 있을지 물었다. 담임은 답을 회피했다. 나는 담임 선에서 이 일은 끝내달라고 했다.
담임은 이게 고사라 대학입시와 연결되어 있어 자신이 처리하기는 힘들다며 은근히 나의 선처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도 더 이상 일을 확대하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만 부탁했다.
담임은 ‘다행이다.’라는 듯 한숨을 돌리면서도, 혹시나 이 일로 아이가 이번 시험을 망쳤다며 항의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제야 담임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워낙 긍정적이라 벌써 잊었을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다시 한번 그 선생님의 사과를 원했다.
담임을 예전에 시험 도중에 일어난 학교 시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30초 차이로 학생은 답안 작성을 못 했고, 이는 학교 잘못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단다. 이후 시험 기간에는 모든 학생이 초시계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며 “이번 일을 이해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히 인사했다.
어떻게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진 교사가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죄의식 없이 비속어나 욕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었지만, 이 일로 아들이 학교에서 거론되는 걸 원하진 않았다.
담임은 시험이 끝나자, 아들을 불러 대신 사과하겠다며 수련회 가서 잘 지내자고 했단다. 끝내 그 선생님의 사과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일을 키우진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학교에서도 담임도 긴장했으리라 믿는다.
딸도 여기서 그만하라고 했다. 아들은 시험을 못 봤는지 웃으면서 그 말 이후로 공부가 잘 안되었다며 우리를 잠시나마 웃게 했다.
“아들아! 우리가 이걸로 더 이상 문제 삼아서 얻을 게 별로 없어. 이럴 때는 경고만 하고 넘어가는 거야. 여기서 일을 키우면 진상이 돼버려. 싸울 때는 항상 이길 수 있는 확실한 무기가 있을 때만 하는 거고. 대신에 또 한 번 문제가 생기면 그땐 엄마가 학교 뒤집어 놓을 거니깐 걱정하지 마!”라며 아들을 달랬다.
학교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우리의 성장을 결정한다. 우리는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로 멋진 아들이 배운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아들의 승리야. 언제나 내 멋쟁이가 가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잃지 않길 바래. 그리고 기억해, 우리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걸."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