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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Jun 03. 2024

정말 골수암이라니? : 가족의 사랑으로 가고파요.


5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 불교 신자가 아닌 나로서는 평소 그저 달력에 붉게 표시된 또 하나의 공휴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날이 지나야 들을 수 있는 골수암 진단 결과가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를 만나고 온 순간부터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빨리 오진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불안해하는 나의 목소리를 들은 딸은 비 오는 거리를 뚫고 병원으로 디저트 빵 여러 개를 사 왔다.     


먼 길을 달려온 딸은 빵을 먹고도 양이 차지 않았는지 치킨을 먹자고 했다. 딸은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과 감자튀김을 배달의 민족에서 주문했다. 30분이 지나도 치킨은 오지 않았다. 딸은 배달의 민족과 채팅을 시작했다.     

그러자, 라이더를 구하는 중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음식을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이쁘나! 치킨이 다 식었겠당. 그래도 치킨은 따뜻해야 맛있는데!”


“그러니깐. 비가 와서 라이더가 없었나 봐?”라고 말한 딸은 할인 쿠폰을 받기 위해 배달의 민족과 채팅을 다시 했다     


딸은 음식이 식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뜻밖의 답이 왔다. 고객님이 원하는 걸 말하라고 했다나는 금액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한다고 말하라고 했다. 그러자 주문취소를 해드리면 될까요?”라는 답이 온 거다.     


주문취소를 해준 덕에 우리는 공짜 치킨을 먹게 되었다. 나는 똘똘한 딸을 칭찬하며 딸에게 치킨값을 건넸다. 좋아하는 딸을 보면서 ‘내가 이 맛에 사는데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딸이 엄마를 위해 먼 길을 와서 위로해 주고 갔지만나의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목요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의사 선생님이 언제 오실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간호사실만 왔다갔다 하면서 협진은 잘 되었는지, 판독 결과는 나왔는지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생각지 않았던 유방암 수술을 담당해 주신 송 교수님께서 내 병실 쪽으로 걸어가고 계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송 교수님!”하고 부르자, 교수님은 뒤돌아보셨다.


“교수님! 저 보러 오신 거예요?”     


“네!”라는 대답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이분이 직접 나를 보러 오셨다고정말 골수암인가?’     


정말 골수암이에요?”라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라는 대답은 나를 휘청하게 만들었다.     


“그럼, 작년에 왜 몰랐지요?”


작년에 검사하고 결과를 보러 오지 않았어요퇴원하고 결과가 나왔나 봐요?”     


“그래요? 어쩌지요?”


“검사를 해봐야 할 거 같아요. 그런데 치료를 어떻게 하지요? 항암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는데 하실 수 있어요?”     


“저는 항암 방사선은 못 해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골수 검사도 해야 할 거 같은데요.”     


“다음 주에 시간 잡아야겠지요?”


“그래야지요.”     




교수님과 대화가 끝나고 병실로 돌아왔다. 침대에 앉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혹시 몰라 연금을 해약한 나는 그 돈으로 금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에서 움직일 수 없어 딸에게 부탁했다. 종로에서 금을 다 샀다며 딸의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속으로 흘러나왔다. 딸의 목소리에 듣는 순간 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말없이 울었다. 불안함을 느낀 딸은     


“무슨 일이야? 선생님 만났어? 뭐라 했는데? 정말 암이래?”라며 계속되는 질문의 답을 눈물로 대신했다. 신나 했던 목소리는 어느새 울음바다로 변했다. 딸의 울음소리에 나는 다시 힘을 내어 말했다.     


“딸, 왜 울어? 딸까지 울면 엄마 정말 힘든데. 엄마가 지금 정신이 없네. 울지마. 울면 기운 빠져. 조심히 집 잘 가고. 이따 통화하자.”라며 전화를 끊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방법이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자기야!”라는 평소의 힘찬 목소리와는 달리 나의 슬픈 목소리에 짐작했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남편은 “선생님 만났어? 뭐라는데?”라는 목소리에 숨이 차 있었다.    

 

“맞네. 어쩌지? 나 자꾸 눈물만 나와!”


“왜 안 그렇겠어. 나도 이런데. 그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아. 울고 싶으면 울어.”     


“확실해! 검사는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거야그래서 다음 주에 검사한다고는 했는데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병실도 어제 옮기기는 했는데 균 검사 환자 오면 다시 다인실로 가야 하고. 지금 너무 지쳐있어. 나가고 싶어.     나 그냥 집에 가야 할 거 같다여기 더 있으면 미칠 거 같아검사는 9월에 와서 해야겠어.


“그래도 괜찮을까? 선생님은 뭐라고 하셔?”     


검사해야 한다고 하는데 골수암은 유방암 검사와는 차원이 다르네각종 암 검사에 심장과 신장 등 많은 검사를 해야 한 데그리고 골수까지 뽑아야 하고지금 내 컨디션으론 무리일 거 같아. 휴식이 필요해.     


내가 작년에 너무 힘들었어. 당신은 모르겠지만, 그때 골수암이라 그랬나 봐. 식욕도 없었고 살도 6kg 가까이 빠지고머리가 터지게 아팠어생리도 너무 많이 했고요양병원에서 혼자 기절도 여러 번 했었거든. 퇴원도 1월에 하려다가 2월에 한 거구.     


생각해 보니깐 골수암 증상이 작년 내내 있었네. 하지만 3월에 새로운 병원 갔잖아? 거기 한의사가 준 약 먹고 기운이 좀 오르더라고. 퇴원해서는 XXX 병원에서 사 온 노랑물이 한 병 남아 있더라고. 그걸 마셨거든.     


그때 XXX 병원장이 한약과 먹으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했거든. 그래서 나는 한약과 같이 먹어서 몸이 좋아졌다고만 생각했었지. 몸이 좀 편해지기에 이번에 MRI도 찍은 거고. 지금까지는 기운이 없어서 MRI 검사를 미뤄왔거든.     


1년 안에 골수암은 70% 이상 사망한다는데 난 아직 살아있잖아아무래도 지금 암이 막 움직이진 않나 봐근데 괜히 건드리고 싶지 않네. 집에 가야겠어. 나 그냥 내일 퇴원할래.”     


“어쩌면 당신 말이 맞는지도 몰라. 괜히 건들 필요는 없지. 몸도 힘든데. 집에 와서는 어떻게 하려고?”     


“우선 2주 정도 집에서 쉬면서 XXX 병원장 물 먹으면서 아이들과 놀고 싶어.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돌아다니고 싶어. 파라핀의 효과가 크니깐 그거 하면서 지내보려고.”     


파라핀?


“어. 그거 3주 정도 매일 5시간 이상씩 손과 팔다리에 했더니 오른쪽 팔과 어깨 통증이 거의 나았어그리고 왼쪽 다리 골수암이 있다는 곳도 통증이 거의 사라졌고많이 걸으면 다리가 아프잖아그런 날 하고 자면다음날 괜찮더라고.     


암이 열에 약하다고 하잖아암뿐만 아니라 모든 병이 찬 데서 오는 거니깐따뜻한 파라핀이 효과가 큰 거 같아. 많은 기계를 사용해 봤지만, 효과가 가장 좋네. 문제는 청소인데. 딸이 알아서 해준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새로 간 병원에서 3개월간 약 먹으면서 치료해 보려고. 거기 병원이 나에게 맞는 듯하니깐. 비싸긴 하지만, XXX 병원장님 물도 먹고. 9월에 와서 모든 암 검사 할래.”라고 말하면서 퇴원을 결심했다.     




기다렸던 척추 신경과 교수님은 다음 날 아침 퇴원 준비에 바쁜 나에게 오셨다. 손짓하며 간호사실로 오라고 하셨다. 나의 영상 사진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셨다.     


“골수암이 맞다고 하던데요? 송 교수님께서요.”      


“맞는 거 같아요. 여기 보세요. 척추 1번과 2번 사이에 하얀 거 보이시죠여기도 퍼진 것 같아요본 스킨 다시 찍어봐야 알겠지만여기저기 퍼져있을 수 있어요. 어제는 좋은 소식이 아니어서 송 교수님께 부탁드렸어요. 기다렸다고 해서 온 거예요. 이젠 저와는 관계없고, 유방외과와 종양과로 가셔야 할 거 같아요.”     


“그동안 감사합니다. 어쩌면 1년간 몰랐던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 보면.”이라고 웃으며 말하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정말 다행이고요. 치료 잘 받으세요.”     




영상을 확인한 후 더 급하게 퇴원했다. 잠시도 있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하면서도 부정했던 골수암이 사실로 나타났다. 이때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내 앞에 닥친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이제 나는 집과 다니던 병원에서 치료하여 다시 힘과 에너지를 축적해야만 한다. 가족과 주위 친구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암과 싸울 준비를 할 것이다. 내 삶은 여전히 소중하다살아있는 지금이 순간을 최대한 소중히 여기며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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