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시한부를 넘어 암과 함께 새해를 맞이한 나.

by 김인경


한해가 끝났고 새해가 밝아왔다. 우리는 해가 바뀔 때마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고, 다가올 날들은 조금 더 나은 삶을 기대해 본다. 나 또한 2025년을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다.

2025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준 뜻깊은 해였다. 올해 초 만해도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수 없을 거라 여겨 죽음을 준비했었다. 그런 내가 지금, 2026년이란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두 달”


그 말은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끈질기게 버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슬퍼하면서도 암과 싸웠고, 아이들 앞에선 나약하거나 비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최대한 많이 웃었다. 그런 나를 딸은 옆에서 언제나 응원해 주었다.




암이 너무 커 하루도 통증 없이 지나간 날이 없었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24시간 내내 팔다리의 고통과 함께 살았다. 그럼에도 신비의 물 덕에 지금은 혼자 걷고 내 한 몸은 챙길 정도로 회복되었다.


물론 이것도 병원에서 해주는 밥 먹고, 청소해 주고, 아프면 치료해 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몸을 깊이 구부리는 것도 오래 걸을 수도 없다. 항상 팔다리를 아껴야 한다. 자칫하면 사타구니에 있는 암 때문에 다리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깨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어깨의 암이 다리의 암보다 더 강하고 더 많이 썩었는지 모르겠다. 통증을 비교해 보면 훨씬 강력하다. 하지만, 팔은 움직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는다. 반면, 다리는 걷지 못하면 바로 드러난다, 그 불편함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물어본다.


“암의 크기가 몇 센티예요?”라고. 나는 웃음으로 대답하며,


“가로, 세로, 높이, 깊이 모두 재야 하는데 측정이 가능할까요?”


그래도 궁금해하는 분이 있으면 사진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암과 비교하면 믿기 힘든 크기라고 말하지만,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이 먼저다. 아무리 내 암이 커, 통증을 호소해도 자신 손가락에 박힌 가시 하나가 더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12년 동안 나는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았다. 암을 제외하면 겉 보긴 엔 건강한 사람과 다르지 않다. 통증은 보이지 않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를 보면, 대부분 아픈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며칠 전부터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죽고 싶을 만큼 심한 통증을 참으려면 많은 에너지와 인내가 필요하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모든 해야 한다. 다행히 1년 반이란 시간은 나에게 통증을 다루는 법을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


우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다. 마약도 듣지 않는 통증이기에, 약에 기대지는 않는다. 대신 지치고 힘들어도 따뜻한 기계들을 최대한 활용한다. 몸이 불편하면 기계 사용도 힘들지만, 그 또한 죽을 수 없기에 견디어야 한다.


이때 시너지 효과를 내주는 것이 신비의 물이다. 20~30분 간격으로 마시며 열 치료를 병행한다. 통증이 발목까지 내려오면 발목이 시리면서 참을 수 없는 기분 나쁜 차가움이 온 다리로 퍼진다.


이를 막기 위해 발 고주파와 일라이트 매트를 50도까지 올려 암 부위 맨살에 올린다. 처음은 뜨겁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암이 열을 모두 흡수해 50도조차도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땀이 비 올 듯 쏟아지고 몸은 점점 지쳐가지만, 잠시라도 통증은 줄이기 위해선 버텨야만 한다.


아무리 참고 견디어도 1시간 반 이상은 힘들다. 뜨겁게 열 치료를 해도 멈추는 순간, 비웃듯이 모든 통증이 다시 찾아온다. 그럴 땐 기운이 덜 빠지는 좌훈기에 앉아 라파 2개를 양쪽 어깨에 올려두고 유리듬을 함께 사용한다.




상상할 수 없는 큰 암은 예고 없이 언제든 통증을 보낸다. 잠시도 방심하면 안 된다. 항상 조심하고 치료에만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크리스마스엔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고 싶었다. 좁은 병원이 아닌 넓은 내 집에서.


집에 도착하자, 집안의 따뜻한 공기가 좋았다.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과 남편이 있어 행복했다. 이것도 잠시, 얼마 전 새로 들인 세탁기와 건조기를 보겠다고 벼란다 문을 여는 순간, 찬바람이 약하게 느껴졌다.

그대부터 다리의 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암이 워낙 크기에 그 움직임을 자주 느낀다. 줄 때도 커질 때도 암은 살아 있음을 알려주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문을 닫고 식탁에 앉아 있었지만, 아이들이 잠깐씩 여는 문틈으로 새 들어오는 바람을 암을 놓치지 않고 꿈틀거렸다.


결국 나는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모든 옷을 벗고 바로 발 고주파와 일라이트 치료를 시작했다. 충분히 땀을 빼며 다리와 어깨 통증에 뜨거운 찜질을 하자, 조금씩 움직일만했다.

다음날 권사님과 구역 식구가 왔다. 밤공기가 꽤 쌀쌀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기 위해 파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퍼스트 가든’으로 향했다.


역시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내줄 수 있는 곳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트리 등이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넣어주었다. 하지만, 차가운 밤공기는 암이 있는 팔과 다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차를 마시고 병원으로 돌아오자, 다리에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나는 최대한 열 치료를 했지만, 다음 날 아침, 암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엉덩이 부분부터 아픈 게 예전의 극한 통증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어김없이 심한 통증이 오고 있었다. 나는 통증 치료를 받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펴져 가는 통증 부위를 최대한 따뜻한 바닥에 놓고 지졌다. 뜨거움이 들어갈 때마다, 좀 더 강한 통증이 왔다.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2시간을 버텼지만, 더 이상 찜질방에 있는 건 무리였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많은 땀이 흐르는데도 발바닥엔 땀이 나지 않았다. 발바닥에 땀을 보기 위해 뜨거운 바닥을 찾아다니며 지졌지만, 오늘도 실패다.


병원 찜질방의 바닥은 타일이다. 열이 오르면 엄청 뜨겁다. 하지만, 암 환자의 몸을 뜨거운 타일 바닥은 이기지 못했다. 계속 한곳에 누워있으면 금방 차가워진다. 그래서 사람이 없을 땐 이쪽저쪽 옮겨 다니며 따뜻한 곳을 찾아다닌다.


암의 차가움이 얼마나 독한지 나는 매일 열 치료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암은 어떤 열도 모두 흡수해 버린다. 일라이트 50도는 살이 데는 것처럼 뜨거운 온도지만, 암 부위에 되면 어느새 뜨겁지 않다.


라파도 마찬가지다. 45도로 올라가도 ‘뜨겁다’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이처럼 세고 무서운 암을 이기기 위해선 먼저 체력 관리를 잘해야 한다. 체력이 없으면 우리는 열 치료도 할 수 없다.


암 치료는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 나처럼 죽을 때까지 암과 동행해야 하는 말기 암 환자에겐 평생 해야만 하는 치료이다. 아무리 좋은 약도 물도 열 치료가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몸의 온도를 1도만 올리라는 말이 있다. 암 환자에게 1도란 상상 이상의 숫자이다. 나는 매 순간 몸의 온도를 0.1도라도 올리려고 애쓴다.



지루한 시간을 이기기 위해 찜질방에선 유튜브나 핸드폰을 본다. 방에선 TV를 보면 힘든 열 치료에 최선을 다한다. 이때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말한다.


“인경아! 지금 너의 직업은 암을 이기는 거야. 직장에서 성과를 내면 승진하듯, 지금은 암을 이기는 게 승진하는 거야. 알지? 우리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


통증으로 시달려도 더 좋은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있는 나에게 감사한다. 사랑을 원하는 나의 몸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모든 열정을 치료에 전념한다. 하나님이 다시 주신 이 생명을 기쁘게 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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