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받는 날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나는 단 한 번도 선물을 받아보지 못했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는 늘 부러운 남의 집 이야기였다. 그런데 올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준 날이 되었다.
지난주 금요일, 새로운 물을 마신 뒤 처음으로 본 스캔과, CT검사를 받았다. 그날은 컨디션이 꽤 좋지 않았다. 생리는 하지 않지만, 두 달에 3번 정도 심한 통증이 찾아온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나쁜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나면 며칠간 극심한 암 통증을 겪는다. 금요일에 검사가 있어 최대한 조심했건만, 생리적인 현상을 이길 순 없었다. 수요일 밤부터 거의 참을 자지 못한 채, 통증과 씨름했다.
처음 겪는 고통스러운 암 통증이 왔을 땐, 병원장님과 간호사 등 여기저기에 호소해 보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통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번 찾아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간다는 걸 깨닫고, 혼자 이를 악물고 견디는 법을 배웠다.
뜬눈으로 밤샌 나는 눈이 벌겠지만, 검사 시간에 맞춰 7시에 본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눈은 감고 있었지만, 긴장 반, 통증 반이 뒤섞인 상태로 지난 1년 6개월을 되돌아 보고 있었다.
8시에 예약된 CT 촬영을 먼저 했다. 본 스캔을 위해 방사선 주사를 맞기까지 2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기분 나쁜 통증을 온몸으로 느끼며 핸드폰을 보면서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주사를 맞고 약속한 언니와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언니와 헤어진 뒤, 드디어 검사 시간이 되었다. 본 스캔을 위해 그들이 말하는 침대에 누웠다. 검사실 안은 기계 때문이라며 이 겨울에도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다.
추위에 약한 암, 특히 에어컨 바람에 취약한 암 덩어리는 이틈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움직이지 못 하게 똑바로 누운 나를 묶어 놓았다. 암이 자리한 팔과 다리는 그때부터 신이 난 듯 통증으로 신호를 보냈다. 20분의 검사 시간은 한 시간 이상으로 길게 느껴졌다.
5일 후,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또다시 아침부터 병원으로 향했다. 생리는 안 해도 생리 때에 똑같은 통증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서둘러 피검사를 했다. 이 결과가 나와야 의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시간이 지나 결과는 나왔지만, 앞의 대기자가 많아 3시간이 지나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암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기대에 마음이 급했다. 선생님은 판독지를 보시고는
“큰 변하는 없다고 하네요.”라며 사진을 보여주시지 않았다.
“선생님! 본 스캔 사진 좀 보여주세요. 제가 사진 찍어 가고 싶어요.”라고 부탁하자, 그제야 모니터에 사진을 띄어 주셨다. 나의 본 스캔 사진과 검사지를 촬영한 후, 처방전을 받아 나왔다.
점심을 먹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번 본 스캔 사진과 지난번 사진을 비교했다. 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본 병원에서는 25% 이상 줄거나 커지지 않으면 “변화 없음”이라고 표현한다는 교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비록 25%까지는 아니었어도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일 만큼 줄어있었다. 다리가 아팠던 이유도, 암이 통통해지면서 점점 밖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진은 밖으로 퍼지는 게 아니라 안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어깨도 통증이 예전보다 줄어든 이유는 암이 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었다. 나에게 이런 기적이 오다니. 너무 행복해 소리를 질렀다. 처음부터 나를 지켜본 간호사들도 믿기 어렵다는 듯이 함께 기뻐해 주었다. 어떤 분은 축하한다며 방으로 찾아와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이런 일이 흔하지 않기에 모두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말기 암 환자, 그것도 2달 시한부를 받았던 환자의 암 크기가 줄어든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 ‘좋은 결과’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거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항암치료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물과 나의 노력이 합해져 있을 수 없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었다. 너무 기쁜 마음에 가족 톡에 두 사진을 올렸다. 남편은
“많이 줄었네. 굉장하군. 하하하 신기한 물이네?”라며 신나 답이 왔다.
그 말을 보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1년 반 동안 너무 고생했고, 노력하며 끝까지 버틴 나 자신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매일 내 방을 청소해 주시며 나의 고통을 제일 많이 본 선생님은 나의 노력에 결과라며, 포옹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병원장님도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나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원장님! 지금 물을 마시고 좋아진 건 맞지만, 이 병원이 저를 살린 것도 사실이에요. 작년 6월의 고비를 넘기고 왔지만, 10월과 올 1월의 고비는 원장님이 만들어주셨잖아요. 그때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면 오늘과 같은 결과는 없었겠지요.
앞으로 이물의 효과가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이젠 겁나지 않네요. 죽을 거 같지도 않고요. 정말 감사해요.”
나는 안다. 암은 똑똑하기에 이물의 효과가 영원하진 않을 거라는 걸. 하지만, 지금까지 매번 고비를 넘겼듯이 앞으로 큰 통증이 와도 좌절하지 않고 견딜 자신이 생겼다.
지금도 간헐적인 통증은 매일 달고 산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고통을 4번이나 겪고 나자, 웬만한 통증은 표현하지 않고 웃으며 넘길 수 있다. 마약도 듣지 않는 무서운 통증도 견딘 내가 이 정도 통증은 감사의 채찍으로 여기며 살 수 있다.
남들보다 조금 불편해도, 남들보다 더 웃을 수 있다. 살아있고 웃고 있는 나에게 감사한다. 물은 15분 간격으로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마신다. 나에게 새 생명을 준 이 물은 핸드폰처럼 항상 곁에 있다.
물론 물만으로 이 모든 결과가 나온 건 아니다. 매일 암이 싫어하는 찜질은 물론이고, 앉을 때도 가능한 좌훈기에 앉았다. 이때 라파도 2개로 어깨와 사타구니, 즉 암에 있는 곳에 올려지졌다.
또한 많이 걷지 못하는 나는 근육이 빠지지 않도록 유리듬과 발 고주파, 일라이트 등 잠시도 쉬지 않고 암을 괴롭혔다. 이 모든 노력에 나의 생명수는 시너지를 더해준 것이다. 잠시라도 게을리하면 암은 곧바로 통증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래도 오늘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견딜 수 있는 오늘의 아픔에 감사한다. 또한 암이 쉬지 않고 나를 괴롭히듯, 나 또한 쉬지 않고 암이 싫어하는 물과 약물, 그리고 온열치료에 전념한다. 이런 나는 분명 암을 이길 것이다.
20251231